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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반 꼴등의 귀환

by 헤엄



십 분만 걸어도 땀이 비가 되는 여름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물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입사 당시와 비교하면, 내 몸무게는 35kg 가까이 줄었고, 감량 비결을 항상 운동으로 알렸으므로. 지난달까지 하루에 삼십 분씩 달렸지만, 여름에 패배한 이후로 실내 사이클만 밟는다는 말이 적당해 보였다.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뚱맞게도 내 대답은 이랬다.


“수영을 다시 시작하려고요.”


문제는 내 목소리였다. 원래도 작은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작은 탓에 그 뒤로 대답이나 호기심이 따라붙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속으로 수영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는 사실에 우려와 호기심을 번갈아 드러낼 뿐이었다.

수영을 다시 시작한다.


이는 나답지 않은 결정이다. 나와 가장 먼 결정이기도 하다. 자존심 하나만 꽉 쥐고 살던 나는 뭐든 결정하면 번복하지 않았다. 내 연애에 재회란 없었고, 끝난 친구와도 두 번 다신 안 봤다. 나를 지나쳐간 인연은 전부 죽은 사람, 지나쳐간 상황은 전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종종 추모하듯 떠올려는 주겠지만, 절대 뒤로 돌아가거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끝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반박할 수 없기에 끝난 거라고 믿었다.


그런 나는 이미 수영을 배웠었다. 배웠다는 말도 부족하다. 일 년 전쯤 나는 수영을 사랑했었다. 하루 평균 두 번은 수영장에 갔고, 가끔은 종일 수영장에 머물렀다. 그뿐인가. 수영복을 백 벌 가까이 모았으며, 수영복 보관해 두는 수납함까지 선물 받았었다.


그러나 너무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수영 역시 그랬다. 모든 초보 수영인을 시험하는 장벽이 있다. 그 장벽 이름은 평영이다. 개구리헤엄으로 일컫는 수영법으로……. 설명하자니 내가 뭐라고 평영을 설명하나 싶다. 난 평영을 아무리 배워도 알 수 없어서 수영과 끝냈다. 매달리듯 내 시간과 마음 다 긁어모아서 평영에 가져다 바쳐도 평영은 끝없이 미지의 영역이었고, 평영에 휘둘리기를 몇 달째. 끝내 수영과 헤어졌다. 앞서 말했듯 헤어지면 끝이므로 이후 스피닝, 달리기, 방송 댄스 등을 배우며 수영 아닌 운동으로 운동 시간을 채워 왔건만. 수영과 끝난 지 4개월 만에 수영이 내게 안부를 전해 왔다.


“우리 동네 수영장, 리모델링 끝났대.”

“그래?”

“8월부터 강습도 재개한다던데, 다시 배울 생각 없어?”


정말이지, 이별 후 흔한 장면 중 하나였다. 헤어진 후 근황을 전하며 다시 만날 생각 없는지 묻는. 내 인생에 재회는 없으므로 이번에도 그러든지 말든지 딱히 관심 없다는 대답을 꺼냈다. 게다가 그 대화 끝으로 몰래 검색해 봤더니 강습생 모집은 이미 지난주에 끝났다. 다행이었다. 내 철칙을 무너뜨리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도 나에게 끝은 끝일 수 있어서 다행인 줄 알았으나 그런 안도 끝에 너무 쉽게 안심한 걸까. 이별 후 가장 위험한 시간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새벽. 그놈의 새벽이 문제였다. 자다 깬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동네 수영장을 검색했고, 하필 내일이 추가 모집 당일인 걸 확인하고 말았다. 망할. 아니지. 어쩌면 망한 상황이 아닐 수도 있어. 내일까지 자존심으로 버티면 영원히 수영과 끝인 거야. 자존심만 생각하자. 어떻게든 나답게 자존심만 지키려고 했지만, 빌어먹을 알고리즘이 문제였다. 도망치듯 동네 수영장 홈페이지에서 빠져나왔더니, 네이버 홈엔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밈을 다룬 글이 띄워져 있었다. 결국, 아침에 눈 뜨자마자 동네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오전 중급반 자리 남아 있어요?”


그렇게 나는 수영과 재회했다.

이게 다 빌어먹을 우울 때문이다.




우울은 내 죽마고우다.


내 우울증은 발생 지점 없이 태초부터 나와 함께했다. 가볍게 말하자면, 본투비 우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별게 다 우울했고, 때로는 우울이 나 같았다. 우울을 의인화하느라 태어난 게 나 아닐지 의심하며 살았다. 툭하면 우울했던 나는 초등학생 때 따돌림을 당하며 더더욱 확실한 우울에 빠져 갔는데, 우울 속을 한 바퀴 헤엄칠 때마다 몸에는 여러 흔적이 남았다. 초등학생 땐 책상에서 떨어지는 자해를 반복했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오래 앉아 있으면 무릎이 아프다. 중학생 때부터는 두 손등을 샤프와 연필로 찌른 다음 칼로 여린 살 긁어내는 자해를 일삼았다. 그 결과로 지금도 내 손등엔 주근깨처럼 갈색 반점이 다닥다닥 남아 있다. 이외에도 우울은 내 몸에 숱한 흔적을 남겼고, 그로는 모자랐는지 내 인생 자체를 차지했다.


이렇듯 평생 함께 지내다 보니 웬만한 우울이나 절망에는 오히려 태연한 나였다. 이를테면 친구에게 마귀 소리 들으며 왕소금 잔뜩 맞았을 때는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집에 그렇게 돈이 없으면 자살하라는 말 들었을 때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자살로는 사망 보험금이 안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살아 있다고 대꾸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우울 앞에서는 끊임없이 위험 신호가 들렸다.


쉴 때마다 죽고 싶다.

이 한 마디가 요즘 나를 좀먹은 우울이다.


나는 워커 홀릭이다.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하고, 일 외에는 바라는 것 없이 산다. 일만 계속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요행 역시 안 바란다. 그냥 일하고 싶다. 계속 일만 하고 싶다. 쉬는 날은 일할 때까지 나를 충전해 두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일 없는 날마다 충전이 아니라 이대로 죽고 싶어진다. 일할 때는 성취감 속에서 허우적거리지만, 일이 없거나 한가할 때는 우울이라는 감정에 빠져 헤엄치기를 몇 차례, 익사하는 순간만 기다린다.


그러던 7월 31일쯤. 이러다간 내가 내 목숨에 끝을 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난 일주일간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후련한 마음으로 산책에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이기도 했다. 그때 문득 이대로 집 돌아가지 말고, 죽자는 결심이 섰다. 죽음이야말로 내 집이겠다는 확신도 함께였다.


솔직히 나는 절대 죽고 싶지 않다. 적어도 제정신일 때는 그렇다. 나야말로 내가 제발 일 마치고 찾아온 쉬는 시간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바라도 자꾸만 ‘쉬는 시간’을 ‘죽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치려 해 봐도 안 된다. 그냥 쉴 때마다 영원히 쉬고 싶어진다. 겨우 일로 도피했는데, 또다시 자살 충동이 나를 찾아냈다.


또다시 죽고 싶어진 나에게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밈과 수영 수업 재개 소식은 우리 엄마가 정말 열심히도 믿는 하나님의 마지막 발악 같아 보였다. ‘네가 죽으면 내가 사랑하는 신도가 무너지잖아. 안 돼. 그럴 순 없어. 너!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너 수영 좋아했잖아!’ 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아니지, 실은 죽고 싶지만, 그만큼 살고도 싶으므로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밈을 실험해 볼까 한다. 그 밈이 틀렸더라도 물속에 들어가서 이 지독하고 끈질긴 우울증을 박박 씻어내고 싶다. 그래서 수영 강습을 재등록하고, 정신과 상담 예약도 잡았다. 죽고 싶지만, 살고도 싶으니까 한 번만 더 애쓰기로 했다. 끝을 외치면 정말로 끝인 나를 알기에, 수영과 재회해서라도 내 입에서 ‘내 인생 끝!’ 이딴 말이 나오지 않도록 딱 한 번만 더.


그저 그 마음이었다. ‘쉬는 날’을 ‘죽는 날’로 인식하지 않고, ‘수영을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는 날’로 받아들이던 작년으로 회귀하고 싶었을 뿐이다. 왠지 모르게 이런 내가 연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위해 거꾸로 헤엄쳐서 과거 어딘가 행복했던 때로 힘껏 향하는 연어. 또는 나를 죽음으로 몰아내려 드는 우울의 방향과 반대로 헤엄치고 있는 연어. 뭐든 상관없었다. 나는 우울에서 살아남은 나를 향해서 힘껏 헤엄쳐 갈 생각이었다. 그 결심으로 수영 오전 중급반에 등록했다. 초보 수영인으로 회귀하는 순간이었다.




8월 1일 오전 8시 52분.

제때 수영장에 들어가려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몸은 침대에 축 가라앉아 있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필 어제 꾼 꿈이 좋았고, 이대로 조금만 더 꿈속에 있고 싶었다. 눈이 아예 감기기 직전이었다. 우울과 맞서겠답시고 읽기 시작한, 각종 자기 계발서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퍼뜩 일어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각종 자기 계발서는 수영장 갈 힘까진 되어 주진 못 했고, 잠자코 침대에 앉아만 있었다. 결국, 내게 힘이 되는 건 또 나다. 십 분 정도 넋 놓고 앉아 있었을까. 휴대전화 메모에 이 한 문장만 쓰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렇지만, 내 꿈속에 있으려면 물속으로 가야 해.


내 꿈. 현재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 엄마와 아빠에게 집을 지어 주는 것. 또는 자면서 꾸는 꿈. 그것들이 이루어지든 내가 계속 꼭 쥐고 살든 어쨌든 계속 그런 꿈을 꾸려면, 난 우울이 수용성이라는 우스갯소리라도 굳게 믿어야 했다. 굳게 믿고,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어차피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씻어야 하므로 대충 세수만 하고,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 이용 수칙 중엔 대부분 안 지키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수칙이 있다. 수영장을 오갈 때 반드시 샤워실에서 씻어야 한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인간의 몸은 더럽다. 게다가 수영장에 오는 동안 미세먼지가 동행했을 테다. 그러나 오늘도 사람들은 대충 몸만 적시고는 수영복 입는다. 몇 달 만에 와도 여전하다. 수영장 물은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열심히 온몸을 닦는 동안 샤워실엔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수영장 물은 절대 안 마시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을까.


어찌 되었든 수영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앞섰던 건지 수업 시작까지 20분이 남아 있었다. 수영장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수영장은 50분 수영 후 10분 휴식을 규칙으로 하며, 이 10분간은 다음 강습을 듣는 사람들조차 수영장 안에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지금 나는 20분이나 일찍 와 버렸으니, 수영장과 샤워실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어야 했다. 다행히 나처럼 일찍 온 사람이 늘어나며, 유아풀에 앉을 수 있었지만, 발 끝에 수영장 물이 닿자마자 긴장됐다.


도망친 곳에 다시 온 바보. 범죄 현장에 돌아온 범인. 뭐 이런 신세가 된 것 같았다. 평영에 져 놓고서는 왜 또 왔는지 수영장 물이 묻는 것도 같았다. 게다가 강사진 역시 그대로였다. 몇 달간 내게 평영을 가르쳐 주던 강사님도 보였다. 눈이 마주치지 않게끔 유아풀 바닥 타일만 구경하던 중이었다.


호각이 울렸다. 첫 강습이 시작됐다.




잘할 수 있을까?

뭐래.

처음부터 ‘잘’을 바라선 안 되지!

할 수 있을까?

딱 저 네 문장만 쓰고 중급 레인으로 향했다.


우리 수영장은 총 여섯 개의 레인이 있고, 네 개는 강습용 레인, 나머지 두 개는 자유 수영 레인으로 쓴다. 그중 중급반은 왼쪽에서 두 번째 레인을 쓰는데, 양옆에 초급반과 상급반이 있어, 언제 와도 어중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속에서 숨만 쉴 줄 알지, 수영은 잘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둔 것 같다. 이래서 수영장을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극단적으로 우울한 사람조차 어중간하게 해 주는, 이 어중간한 반이 정말 좋았다. 마침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강사님은 킥판을 하나씩 준다.


“자유형 발차기로만 다녀오실게요!”


강사님의 외침을 시작으로 한 명씩 킥판 잡고 레인을 누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열한 명 중 여섯 번째 자리에 섰다. 평영이 문제지, 자유형에선 딱 어중간했던 나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었다고.


그러나 친구든 연인이든 헤어져 보면 안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 사람의 인생은 계속되어, 오랜만에 만나면 내가 알던 모습과 다르다는 걸. 괜히 헛소리를 했는데, 정직하게 사실만 말하자면 몇 달 전과 달리 난 자유형조차 못 했다. 앞사람은 자꾸 나와 멀어졌고, 뒷사람과는 계속 가까워져서 그의 킥판을 발끝으로 걷어차기 일쑤였다. 결국, 뒷사람에게 양보하다 보니 어느덧 맨 끝이었다. 좌절하며 수영장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난 벌써 꼴등으로 밀려났는데, 아직도 40분이나 더 수영장에 있어야 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십 분 만에 꼴등으로 밀려나다니.


심지어 믿을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됐다. 이후 자유형 세 번, 배영 두 번을 끝으로 문제의 평영 수업이 시작됐으니까. 이미 자유형과 배영으로 기진맥진하는 가운데 평영이라니. 심지어 내 앞사람 역시 나처럼 평영을 전혀 할 줄 몰라, 강사님은 그 사람부터 고치겠다며 나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저기, 평영으로 어떻게 먼저 가나요? …저, 평영으로는 한 뼘도 못 가는데.”


그 말에 언제나 그랬듯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뭘 배우든 강사님들은 수강생의 자존감을 지켜주고자 할 수 있다는 말부터 해 주신다. 그러나 그 말의 유통 기한은 항상 짧다. 평영이 아니라 허접한 발재간으로 허우적거리는 나를 한두 번 쳐다보시던 강사님은 끝내 앞사람을 내버려 두고, 내게 달려오셨다.


“다리를! 미세요!”

“다리를 어떻게 밀죠?”

“아니! 미시라니까!”


어떻게 미냐는 말이 한 번 더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냥 열심히 허우적거렸다. 그러기를 서너 바퀴째. 정확히는 열심히 허우적거리는 나와 더 열심히 내 다리를 붙잡고 움직여 주는 강사님 둘이서 서너 바퀴를 우스꽝스럽게 돌았을 무렵. 수영 강습 끝을 알리는 호각이 들렸다.


가르치느라 지쳤을 텐데, 여전히 환히 웃는 얼굴인 강사님께선 둥글게 모이라 하고는 서로 손을 잡으라고 했다. 당장 강강술래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둥글게 모이자마자 할 수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상했다. 강강술래나 다름없는 모습도, 이미 엉망인 나에게 시달렸음에도 계속할 수 있다고 해 주는 강사님도. 이상한 걸 보면, 도망치라 배웠으므로 도망치듯 샤워실로 향했다. 그런데 더 이상했다. 샤워기를 가장 세게 틀어놓고, 닿기만 해도 따가운 물줄기 아래 서 있는 동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몇 달 전과 비교하면 엉망 그 자체였던 수영 실력에 좌절할 시간이었는데, 웃음이 계속 났다.


“나 완전 엉망이다.”


그 혼잣말을 수없이 했다. (다행히 다들 이용 수칙을 잘 지키지 않는 덕분에 씻고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마음만 엉망인 줄 알았는데, 수영 실력도 엉망인 게 웃겼다. 심지어 목욕 바구니에 수건이 없었다. 수건마저 두고 온 거다. 여러모로 다 엉망인 내가 웃겨서 계속 웃었다. 정말이지, 뭐든 다 이상한 날이었다.




AM 11:18

오랜만에 하니까 자유형도 힘들다 꼴등 순서로 헤엄쳤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평영만 못하는 건 아니고 나 다 못한다 다시 시작한 게 아니라 진짜로 수영을 시작한 것 같다

뭐든 다 이상했던 수영 강습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남긴 메모였다. 이후 오후 세 시가 되었음에도 내 머리에선 수영용 샴푸 향이 계속 났다. 그 이상한 순간을 계속 기억하라는 듯이. 엉망인 날 보고 웃었던 순간처럼 좀 웃으라는 듯이. 우울이 수용성인진 잘 모르겠지만, 기분은 종일 ‘나쁘지 않음’에서 유지됐다. 그나마 다행이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내가 월요일에도 수영장에 갈 것만 같으므로.




저기까지 쓰고 나서 정신을 차리니 오후 1시였다.


수영이 남기고 간 여파는 말 그대로 거셌다. 전날 저녁 6시쯤 누웠고, 다시 눈 뜨자마자 확인한 시간은 오후 1시였다. 무려 18시간을 잔 거다. 게다가 온몸에 알이 배겼다. 첫 강습 전만 해도 4개월간 공백은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다. 얼마나 오만했느냐면 수영 강습 첫날에 에세이를 시작하겠다 했고, 오후에는 헬스장도 가겠다며 여기저기 실컷 떠들었었다. 전부 가당치도 않은 소리. 오랜만에 물속을 떠돌았던 몸은 일상을 단 일 분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금세 우울해졌다. 고작 수영 한 시간이 뭐라고 18시간이나 죽은 듯이 잠만 잤을까. 잠만 자느라 해야 할 일은 전부 파도에 밀리듯 내일로 떠밀려 갔다. 업무도, 에세이도, 헬스도, 독서 기록도 무엇 하나 해낸 것 없이 물속에 머문 나만 남아 있다. 쓸모없고, 엉망인 나만 남아 있다는 거다.


윗문단 밑으로 우울한 생각을 쭉 적었지만, 일단 다 지웠다. 월요일에도 수영장에 갈 거라면, 우울에 오래 잠겨선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어떤 과학자도 이토록 빨리 실험을 마치지 않을 테다. 조금 더 오래 물속에 머물러 보고, 그 시간조차 일상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우울에 맞서봐야겠다.





이렇듯 죽지 않고 돌아온 중급반 꼴등의 귀환은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죽지 않고 돌아온’에 집중하고 싶다. 나는 죽지 않고, 계속 돌아오고 싶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