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머무는 것들
도라지꽃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둘 있다
도라지는 오래 묵을수록 약이데이
너무 빡빡 씻지 마래이
외할머니가 도라지를 캐며
해주시던 말이다.
또 한 사람은
깊게 뿌리내린 도라지를
말없이 캐던 아버지
힘줄이 불거진 아버지의 손등에는
노동의 고단함이 선명했다
도라지꽃 한 송이에는 외할머니가
또 다른 한송이에는 아버지가 들어있다
두 분 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도라지꽃 속에서 두 분이 살아난다
사라지고 난 것들이
더 선명하게 남는 까닭은
그것들의 부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잃은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익숙했던 것일수록,
너무 가까웠던 것일수록
그 빈자리는 더 또렷하게 남지요.
지나간 계절의 냄새,
문득 스친 바람 한 줄기에도
누군가의 이름이 겹쳐지고
잊었다고 믿었던 얼굴이
그림자처럼 불쑥, 마음 한켠을 흔들기도 하고요.
그때는 몰랐던 말들,
놓쳤던 눈빛,
익숙해서 흘려보낸 순간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또렷이 되살아납니다.
그리움은 사라진 자리에서 더 또렷해지고
부재는 오히려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남깁니다.
‘사라졌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존재들’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도라지꽃을 보며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저의 마음속에 살아있음을 느낀 것처럼,
당신에게도 떠난 누군가의 부재가
오히려 그 존재를 더 깊고 선명하게
기억 속에 머물게 하진 않나요?
아마도 그들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