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겨울을 맞는 너에게

벚나무, 그 찬란하고 쓸쓸한 생의 주기에 대하여

by 희온

어제의 산책길은 유독 서늘했습니다.


아직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다른 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잎을 무성하게 피워내고 있었지만,

유독 벚나무만이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낸 채

홀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만의 계절을 한발 앞서 살아가는 듯한 그 모습에,

저는 한참이나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봄이 오면 세상 누구보다 먼저,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워 올리는 벚나무.


그 찬란한 분홍빛으로 온 세상을 물들이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그 모습은

언제나 설렘과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봄의 절정을 맞이했기에,

가장 먼저 푸른 잎을 틔우고

이제는 가장 먼저 낙엽을 떨구며

겨울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이겠지요.




문득 벚나무의 생이 우리의 삶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각자의 꽃을 피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벚나무처럼 이른 나이에 화려한 성공을 거두고,

남들보다 앞서 정상의 풍경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 눈부신 성취는 분명 박수받을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도달해버린 정상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잃고 허무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 푸르게 우거진 다른 나무들처럼,

조금 더디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꽃을 피울지라도,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더 깊이 뿌리내리고

더 단단하게 자신을 채워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삶의 진정한 행복은

꿈을 이루는 그 순간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일매일 설레고, 때로는 좌절하며,

다시 일어서는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우리라는 하나의 계절을 완성해가는 것이겠지요.


앙상한 가지로 홀로 서 있는 벚나무를 보며

저는 더 이상 쓸쓸함만을 느끼지 않습니다.


화려했던 봄날의 기억을 품고,

다가올 겨울을 묵묵히 인내하며,

또다시 가장 먼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그 강인한 생명력을 떠올립니다.


일찍 피었다고 해서 허무한 것도,

늦게 핀다고 해서 뒤처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할 테니까요.


그러니 괜찮습니다.


당신의 계절은 당신만의 속도로,

가장 눈부시게 빛날 것입니다.


이 가을, 잠시 숨을 고르며

당신의 푸르른 시간을 응원합니다.


IMG_3915.jpeg 앙상한 벚나무는 벌써 겨울을 맞고 봄을 준비하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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