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서서 푸시업
크로스핏의 장점은 배울 수 있는 동작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크로스핏의 단점은 배워야 하는 동작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운동과 거리 두고 살았던 나는 잘 못하는 동작이 와드로 나올 때마다 무력함을 느낀다. 운동에 재능이 없는 백지 같은 몸이란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치님이 잘 알려주신들 내 몸이 한 번에 퍼포먼스를 낼 리 없다.
대신, 시간의 힘은 믿는 편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꾸준히 하면 결국 목표한 곳으로 가긴 간다는 것을 운동하면서 깨닫긴 했으니까.
시간의 힘을 믿고 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1. 비교하지 말 것
2. 초조해하지 말 것
3. 요행을 바라지 말 것
난 과거에 이 세 가지를 반대로 다 해봤다.
1번. 남과 비교해 봤자 그들과 나의 컨디션, 체력, 몸 상태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 선에서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
2번. 이쯤 되면 어느 정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제자리걸음 같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스스로 양심적으로 정말 꾸준히 노력하고 있었다면 아직 튀어 오를 시점이 오지 않은 것일 뿐, 초조해한다고 될 동작이 안 될 수 없다.
3번. 내 몸은 정직해서 뜻밖에 얻어걸리는 행운으로 갑자기 안 되던 것이 될 리 없다. 설사 아주 운이 좋아 얼떨결에 된다고 해도 그건 가짜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가 됐다면 기어코 언젠가는 다치거나, 교정도 어려울 정도로 잘못된 습관 그대로 하게 된다.
그래서 운동할 때마다 마음 잡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그런데...!
유독 한 동작만 나오면 불안감과 초조함에 잠식되어 자신감이 사라진다.
핸드스탠드 푸시업이라고 불리는, 한 마디로 물구나무서서 위아래로 푸시업을 하는 동작은 아직도 완성도가 0에 가깝다.
이 동작을 하려면 제일 첫 단계로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 이게 안 된다. 머리 아래에 매트를 깔아 높이를 높여보고 별 방법을 다 써봐도 팔과 어깨로 몸을 지탱해 수직으로 세울 수가 없다. 첫 단추를 끼우질 못하니 그다음 단계로도 넘어갈 수가 없다.
어릴 때는 집에서 물구나무 정도는 쉽게 했던 것 같은데 왜 되던 것이 안 될까. 체격이 커져서? 살이 쪄서?
사실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겁이 나서다.
물구나무를 서기 위해 발 디딤을 하는 순간부터 나는 오만 가지 사고 장면을 시뮬레이션한다. 어깨나 팔 힘이 갑자기 풀려서 팔이 꺾여버리면? 그래서 내 목도 같이 꺾이면? 몸을 못 세워서 허리가 다치면?
실제로 다친 적도 없으면서 물구나무를 서는 그 찰나에는 출처도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몸을 감싼다. 몸은 긴장한 채로 굳어버리고 시도하는 척만 해보다가 이내 못하겠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시도를 제대로 해 본 것은 맞을까? 정말 못 하는 것이 맞을까?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지만 나는 내게 관심이 있으니까, 이 동작만 나오면 부끄럽다. 못 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창피함을 참을 수가 없다.
끝끝내 안 되는 것은 정말 안 되는 것일까?
물구나무 못 한다고 내 삶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하나쯤 그냥 못 하는 채로 놔둬도 되지 않나.
내가 한 질문에 이제 답을 찾아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