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해진 운동에 자극주기
옆 동네 새로 생긴 크로스핏 박스로 드롭인을 다녀왔다.
여기서 드랍인이란,
해당 크로스핏 센터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인이 센터를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체험 서비스를 일컫는 말이다. 크로스핏을 처음 접하거나, 평소 다니던 곳이 아닌 박스에서 운동하고 싶을 때 활용한다. 하루 이용권을 사서 운동하는 셈이다.
드롭인을 경험하기 전에는 굳이 왜 남의 박스로 원정 경기 가듯 드롭인을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있는 곳에서나 잘하면 되지. 낯선 환경과 익숙하지 않은 장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운동하기 위해 비용까지 지불하고 운동을 하겠다고? 왜?
첫 드롭인은 2년 전 독일 뮌헨에서 경험했다.
독일에 간 김에 그 나라 크로스핏 박스에서 운동하고 오자는 마음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내 의지는 30%였다. 달군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갔다는 말이 맞겠다. 나처럼 운동하는 자체가 기적인 사람에게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 것은 정말 '굳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온 애송이라고 무시할 수 있으니까 기죽지 말아야지. 인종차별하면 어떻게 되갚아주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딱히 인종차별받진 않았지만 평온한 표정 속에 날 선 방어벽을 철저히 치고 갔더랬다. 원래 쫄리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렇게 도착한 독일의 크로스핏 박스는 충격적이었다. 엄청나게 큰 1층짜리 단독 건물, 수업 클래스를 따로 운영해도 되는 각각의 운동 장소... 그리고 가장 나를 기죽이는 것은 운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독일 사람들 큰 피지컬에 놀란 것이 아니다. 딱 봐도 60세는 훌쩍 넘겼을 것 같은 흰 단발머리 어르신이 가늠하기도 어려운 무게의 바벨을 들고 백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어르신의 승모근은 한껏 화가 나 솟아있었다. 저 연세에 저 무게를, 저렇게 안정적인 자세로 하고 있다는 것은 운동을 삶의 일부처럼 꾸준히 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아주 큰 영감을 줬다. 저분처럼 꾸준히 운동해서 승모근이 솟아있는 멋쟁이 할머니로 나이 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했다.)
크로스핏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여자들도 물구나무를 휙휙 서질 않나, 웜업으로 1km 달리기를 쉽게도 뛰고 오질 않나. 달군이야 운동을 잘하니 물 만난 고기처럼 훨훨 날아다녔지만 나는 계속 마주하는 충격에 정신을 못 차렸다.
자존심이 상한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이곳에 존재하는 가장 가벼운 덤벨이 7kg이었다. 파운드로 계산하면 약 15파운드 정도인데, 내가 당시 덤벨 운동할 때 쓰는 무게가 5-10파운드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한계를 뛰어넘어 무거운 덤벨로 운동을 하며 속으로 울어야 했다.
모든 동작을 스케일 버전으로 바꿔서 했음에도, 나도 나에게 큰 기대 없이 '경험'에 목적을 두고 간 첫 드롭인인데도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라기엔 난 너무나도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비기너여서 상할 자존심도 없었으니 정답이 아니다.
어쩌면, 나 빼고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생활의 일부처럼 꾸준히 해왔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들었던 것도 같다. 먼 나라 초면인 사람들이지만 왜 너네만 어릴 때부터 운동해 왔냐? 이렇게 차이 날 거였으면 미리 삐삐라도 쳐주지...
이런 부질없는 원망과 놀라움을 기반으로 한번 각성하게 됐다. 이렇게 다른 환경 속에서 운동을 해봐야 느슨해진 내 운동 일상에 긴장감을 줄 수 있구나, 그래서 종종 사람들은 다른 박스로 드롭인을 가는구나 이해하게 됐다.
옆 동네 박스는 공원 산책로로 이어지는 달리기 루트가 있었다. 박스 점프를 해야 하는 박스는 나무 박스여서 보기만 해도 정강이 부딪힐까 봐 무서웠고, 가장 가벼운 바벨은 35파운드부터 시작했다. 어디에서 운동을 하길래 자세가 저 모양이냐는 소리 들을까 봐 평소 수업 때보다 더 정확한 자세로 바벨을 들고 쉬지 않고 와드를 진행했다.
어색한 사람들이지만 웜업 운동을 함께하고, 초면이지만 파이팅을 넣어주고 카운팅을 해주며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운동을 마쳤다.
드롭인이 주는 각성 효과는 있었다. 2년 전보다는 와드 수행 능력이 많이 늘어서 운동하는 중간에 '못하겠다고 말하고 도망갈까'라는 생각보다 '꼴찌로 완주해서 주목받지 말아야지. 빨리 다 끝내버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느슨해진 크로스핏 일상에는 역시 자극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