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공평한 사회
수영장 안에도 나름 하나의 작은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1년 가까이 수영을 하면서 느낀 수영장에서의 사회는 밖과 조금 다르다.
뭐랄까, 평등사회에 가까운 느낌이다.
1. 계급, 서열, 나이 따위 없이 동등하게 운동할 수 있다.
물 밖에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물 안에서는 젊고 건장하다는 체력적인 이점도 물과 함께 희석되고 0부터 시작이다. 어리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밀리는 것도 아니다. 하기 나름인 운동이다. 물과 부력이 주는 선물일까?
70세가 넘으신 수영장 물범 여사님들은 쉬지 않고 자유형을 10바퀴도 넘게 돌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체력이 되질 않는다. 물 밖에서는 오늘은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나이 먹으니 안 아픈 곳이 없다며 젊음이 최고라고 나를 치켜세워주시지만 물 안에서는 얄짤없다. 그 점이 참 공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희망적이지 않나.
수영을 하기 전에는 어르신들이 재활이나 수중 걷기,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수영장에 몰린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수영장에 가고 나니 서로 체력과 역량에 따라 반은 다를지언정 운동에 진심인 분들이 많다.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올 뿐만 아니라 수영복이나 수모 정보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2. 상대의 나이도 이름도 직업도 모른 채 존대하며 운동이 가능하다.(예외 있음)
회사에서는 나이가 곧 직급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니 반말 모드를 시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물론 어느 곳에나 예외는 있지만 1년을 다니면서 다짜고짜 내게 반말을 하는 분들은 없었다. 서로 간의 예의를 중요시하는 분들만 만난 거라면 그것도 참 운이 좋은 거지만-.
하루는 한 분이 수강하는 한 달 내내 궁금하셨는지 내 신상 정보를 물어보셨다. 수모를 쓰면 정말 나이대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혼 및 자녀 유무, 나이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는데 내가 그분의 딸과 동갑내기였다. 그분은 딸뻘 되는 남과 나는 엄마뻘 되는 분과 서로 존대를 쓰며 한 반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이를 알고서도 'OO 씨' 하고 존대해 주신다. 보통 수영장에서 선배들은 다 언니라고 부른다는데 차마 그렇게 부르지는 못하고 주어를 생략하는 쪽을 택했다. 엄마한테 언니라고 부르는 느낌은 견디기 힘드니까.
이번에는 아빠 나이쯤 되는 회원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선생님 뒤에서 따라가는데 걱정 마요. 터치하지 않도록 내가 거리 유지 잘하면서 갈게요. 편하게 신경 쓰지 말고 수영하시라고~"
내가 어르신들께 선생님이라고 할 때는 자연스러운데, 왕 어르신이 내게 선생님이라 존칭을 쓰면 당황스럽다. 그래도 존중과 존중이 맞닿아야 불편한 상황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곳이 아니라면 내가 언제 어른들과 서로 존대하며 운동할 수 있을까?
3. 서로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내 운동만 하고 가기 좋은 시스템이다.
수영은 50분 운동 10분 휴식이 규칙이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본인의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한 그룹도 있지만 보통은 나처럼 적당한 선에서 인사나 스몰톡 정도만 하고 각자 운동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나 같은 I성향 사람들은 나보다 잘하는 사람한테 반말하거나 다가가기 어렵다.
어떤 반은 수업이 끝나고 티타임을 가지거나 회식하는 분들도 있던데 그건 연수반이나 교정반처럼 오래 다니며 친해진 사람들의 이야기고 일반적인 수강반은 자기 운동하고 나가기도 바쁘다.
간혹 오래 다닌 고인 물들 중에서는 샤워실 새치기나 친한 사람들 자리 맡기 등 설마 그런 사람이 있겠어? 의 그런 사람을 담당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내심 사람들이 수영장에서 끼리끼리 안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많이 생각한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서 적당히 불편한 듯 존중하며 존대하는 이 분위기가 유지되어야 오히려 내가 편할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이 분위기와 질서가 잘 맞는데 또 모르지.
내년에는 이 말들 다 취소! 하면서 새로운 면을 보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