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니 우리 딸 수플레 팬케이크를 만들고 있었지. 어려서부터 너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어. 조그만 손으로 엄마 도와준다고 양파도 잘라주고 당근도 잘라주고, 물론 날이 무딘 과일 칼로 말이지. 그리고 설거지도 하고 싶다고 해서 키 작은 너는 식탁의자에 올라가 설거지를 해주기도 했는데 기억나니?
방학이면 함께 엄마랑 오빠랑 돈가스도 만들고 김치만두도 빚고 딸기와 레몬, 자몽, 키위 등으로 새콤달콤 과일청도 만들고 초콜릿쿠키도 굽고 머핀도 굽고 와플도 구웠지. 그래. 네 생일에는 동물모양 쿠키를 구워 친구들에게 나눠줬던 것도 생각나. 생각해 보니 많은 일들을 함께 했구나.
막 집에 들어온 엄마가 시장에서 산 물건들을 식탁에 내려놓는데 수플레 팬케이크가 잘 안 된다고 너는 울상이 되어 있었지. 정성을 들여 오랜 시간 만든 머랭이었는데 팬케이크가 엉망이 됐다고. 하지만 마지막으로 완성한 것은 제법 그럴듯했어. 그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리고 아이스크림을 곁들여서 먹었는데 구름처럼 폭신폭신 너무 부드러웠어. 또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온 엄마의 마음을 달콤하게 어루만져 주었지. 이래서 사람들이 브런치를 먹는구나 싶었어. 그냥 모든 시름을 잊게 만드는 달콤함이었어.
팬케이크를 먹다 보니 할머니 생각이 나는구나. 어릴 적 할머니는 되도록이면 모든 음식을 집에서 요리해 주셨어. 엄마가 아직도 못 잊어하는 할머니 음식들이 꽤 있단다. 기름에 동그랗게 튀겨 설탕을 솔솔 뿌려 먹던 도나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구수한 냄새의 주인공인 밥통에 노랗게 잘 익은 카스테라, 그리고 호호 추운 겨울 온기를 녹여주던 추억의 팥칼국수.
음식을 추억하면 맛뿐만이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이 함께 따라오는 것 같아. 추었던 그 시절 할머니의 음식 속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녹아있었어. 할머니를 둘러싼 엄마를 포함한 아기새 4마리는 할머니가 만든 도나스 중 찢어진 도나스를 받아먹고, 카스테라를 자르다 떨어진 귀퉁이 그것을 또 받아먹고, 잘 삶아진 팥알을 하나씩 받아먹곤 했지. 음식이 상에 차려지기 전 잠깐 맛을 보라며 건네던 콩알같이 작은 조각들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잠시 추억에 잠겨 본단다.
우리 딸은 어떤 음식을 먹으면 옛 추억이 생각날까? 혹시 돈가스? (억지로 생각하게 한 건 아니지.)
오늘은 방학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만들곤 했던 돈가스를 만들어볼까 해! 이 돈가스를 만들어 냉동해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돈가스를 튀겨놓으면 너랑 오빠는 정말 좋아했었어.
우선 돈가스 고기를 사야 해. 마트에 가면 돈가스용 고기를 잘라 팔아서 그 걸 사서 하면 좋아. 사 온 고기는 키친타월을 깔고 핏물을 빼고 기름기가 있는 부위는 좀 다듬어서 잘라내면 좋아. 그다음 부엌칼의 칼등으로 고기를 두들겨야 해. 사실 이 과정이 힘든 과정인데 이것을 서로 해보고 싶다고 오빠랑 실랑이도 했는데. 한 장씩 고기를 두들겨서 편 다음 소금과 후추를 뿌려 놔. 고기를 다 두드리고 나면 팔이 좀 얼얼할 거야.
고기가 준비됐으면 돈가스는 무조건 밀계빵을 기억해. 밀가루, 계란, 빵가루 순으로 말이지. 쟁반이나 큰 볼에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를 각각 담아놔. 그리고 돈가스 고기를 한 장씩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물에 적시고 그다음 빵가루를 앞뒤로 골고루 묻혀주지. (엄마가 밀가루를 묻히면 오빠가 계란물을 적시고 네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빵가루를 묻혔었지.) 참, 시판용 빵가루는 너무 말라있어 물을 좀 뿌려 촉촉하게 해 주면 나중에 튀길 때 타지 않는단다.
돈가스를 먹을 만큼만 놔두고 나머지는 소분해서 냉동실에 잘 넣어둬. 나중에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말이지. 그리고 콧노래를 부려며 방울토마토도 씻고, 양배추도 씻어 채 썰어 준비해.
이제 준비는 다 됐어. 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둘러. 엄마는 기름을 많이 넣고 튀기지는 않고 자작하게 넣어 돈가스를 튀긴단다. 기름이 남아서 버리면 아까우니까. 이제 돈가스를 접시에 올리고 채 썬 양배추를 올리고 방울토마토를 반을 갈라 올려줘. 소스는 취향대로 돈가스 소스를 뿌려도 좋고 네가 좋아하는 카레를 곁들어도 좋아. 그리고 양배추에는 발사믹과 올리브유를 뿌리면 좋지만 넌 싫어하니 참깨소스를 뿌리렴. 이제 쟁반에 돈가스 접시를 담고 포크와 나이프도 이쁘게 담아내는 거야.
만약 친구를 초대했다면 여기에 스파게티를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좋을 거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추억이 하나씩 쌓이는 거지. 함께 한 시간들이 있어서 더 애틋해지는 거란다. 아주 나중 네 이쁜 아이들과도 꼭 함께 만들길 바래.
손수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이런 수고스럽지만 사소한 것 같은 일상이 언젠가 네게 힘을 주는 날이 올 거야. 엄마는 네가 나중에 커도 네가 먹을 음식은 최소한 하루에 한 끼는 네가 만들어 먹었으면 한단다. 부엌이라는 공간이 주는 위안이 있거든.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삶의 용기를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정말 하기 싫은 설거지도 하다 보면 복잡한 네 마음이 정화되는 시간이 돼 주기도 한다는 걸 기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