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거짓말은 잘하지 않는 편이다. 인생 살 만큼 사니 거짓말할 일도 별로 없다. 기꺼해야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내 나이 마흔에서 멈췄다'라고 하는 농이나 할 뿐이다.
아마도 일곱 살쯤 되었던 것 같다. 동네 슈퍼에 친구들과 껌을 사러 갔다. 나는 돈이 없어 구경만 했고 친구들이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샀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껌 한 통을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슈퍼 주인은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셨다. 나는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최대한 침착하게 슈퍼를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엄마랑 슈퍼를 갔는데 할머니가 내가 껌을 훔쳐 갔다고 일렀다. 나는 순간 너무 창피해 얼굴이 빨개졌다.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나고 또 아빠한테 더 호되게 혼날 게 뻔했다. 아빠는 우리가 어릴 때 회초리를 꺾어다 놓으시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회초리를 때리셨다. 그 회초리를 생각하면 집에 가기 싫어지만 엄마가 앞장 세우니 별수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라"라고 조용히 타이르고 저녁 하기 바쁘셨다. 나는 그날 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았다. 그런데 그때 회초리를 맞았어야 했다.
그다음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친구가 무슨 일인지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빌려준 적이 있었다.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돈을 이번 주까지 갚지 않으면 이자까지 받을 거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당찬 아이(?)였다. 아니 나쁜 아이였다. 친구는 돈을 갚지 못했고 나는 계속 이자를 붙여갔다. 친구는 매주 원금은 못 갚았으나 이자는 갚았다. 아마도 50원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내 기억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자로 받은 돈 50원으로 하드를 사 먹었다. 팥이 들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겨우 9살 난 여자아이가 친구를 상대로 돈놀이를 하고 받은 이자로 먹는 아이스크림은 더 달콤했다. 나중에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친구는 엄마에게 이실직고를 했고 나는 친구 엄마에게 엄청 혼이 났고 다시는 그 친구랑 놀지 못했다. 친구 엄마는 우리 엄마랑은 모르는 사이였고 우리 집도 어딘지 몰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에서는 이 사실을 아직까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된 친구였고 그야말로 요즘의 학폭감이었다.
그때는 내 안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었다. 재혼 가정의 아이는 불우한 환경을 비관해 삐뚤어질 수도 있었다. 어린아이가 겁도 없이 껌도 훔치고 친구에게 돈도 갈취했다. 친구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일련의 나쁜 행동들을 일삼으며 삐뚤어졌을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아프지 않은데 아프다고 양호실에 누워있는 정도의 거짓말을 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이런 내가 우리 첫째에게는 엄격했다. 왜 유독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첫째 아이도 어린아이였는데 동생이 있다고 의젓하길 강요했던 것 같다.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요일 스포츠교실에 참여하고 평소 같으면 12시쯤 귀가하는데 아이가 1시가 되어도 오질 않았다. 엄마로서 촉이 발동해서 근처 PC방 탐색에 나섰다. PC방은 안 가기로 약속했는데 설마 갔을까? 반신반의하며 첫 번째 PC방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이를 못 만났다. 그래서 좀 더 떨어진 두 번째 PC방을 찾아갔다. 거기에도 아이는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PC방에 아이가 없으면 그냥 학교로 찾아가야지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웬걸 PC방 입구에 아이가 친구들과 떡하니 앉아있는 것이다. 슬며시 아이 어깨를 토닥이니 아이가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아이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집에 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엄마설교를 들어야 했다. 아이는 지금까지 얘기한다. PC방에 찾으러 온 엄마는 엄마밖에 없다고!
나도 아이도 지금까지는 잘 성장했다. 생각해 보면 집을 나가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겁이 많아서 그런지 가출은 하지 못했다. 나쁜 아이가 꼭 나쁜 어른이 되란 법은 없다. 나처럼 나쁜 아이가 커서 좋은 어른은 아니어도 중간쯤 좋은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잘못한 행동을 한다면 어른의 모습으로 따끔히 혼낼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을 잊지 말자. 점점 더 세상 살기 팍팍해지고 흉흉한 뉴스들이 연일 보도되는 요즘, 아이들을 믿어주는 어른이 되어보자.
© pawel_czerwinski,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