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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Nov 29. 2023

매일 읽는 즐거움

평생 내 삶을 추적해 왔다는 듯이 압도적인 문장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삶을 되돌아보는 것뿐이다.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과연 나에게 삶을 바꿀 힘이 남아 있는지 가늠하고, 때로는 불가능함을 터득하면서 또 한 번 인생을 배운다.

- 황보름, <매일 읽겠습니다> 문장 수집의 기쁨 중 -




집에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옆 국민체육센터 내 헬스장에 다니므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들려 책을 빌려온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은 주로 신간 코너에서 고른다. 신간도서 외에도 책 속에 나온 책들을 메모해 놨다가 그 책들을 빌리기도 하고 블로그 이웃님이 올려주신 책을 빌리기도 한다.


보통 대출하는 책은 다섯 권을 안 넘기려 한다. 책 욕심이 많아 예전에는 10권도 넘게 빌려오기도 했는데  자제하고 있다. 대출 기간이 2주인데 그동안 10권은 고사하고 5권이라도 다 읽으면 다행이다. 대부분 못 읽고 반납하는 책들이 다수이기에.


몇 년 전만 해도 책을 엄청 소중하게 다뤘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책을 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이젠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연필로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하고 형광펜으로 표시도 해두게 되었다. 직접 구입한 책은 밑줄을 그을 수 있지만 대출한 도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포스트잇을 활용한다. 하지만 포스트잇을 붙여두면 어떤 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한눈에 보기 힘들어 연필로 연하게 괄호 표시를 해두었다 나중에 반납할 때 지우개로 살살 지우면 감쪽같이 깨끗해진다. 그래서 매번 반납할 때마다 사서 선생님 눈치를 보게 된다. 


간혹 어떤 책은 마음에 들어 정성 들여 밑줄을 긋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종이책으로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하면 총알 배송이라 주문한 다음날이면 대부분 도착한다. 하루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을 빌리는 기준은 대부분 신간인데 재밌게 읽은 책이 있으면 그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 읽게 된다. 최근 이 꽃님 작가의 <여름을 한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고 바로 그날 밀리의 서재에서  <죽이고 싶은 아이>까지 읽었다.  이렇게 작가의 다른 책으로 확장하여 읽는 것도 재미있다. 청소년 소설은 '너도 하늘말라리아야'와 '완득이' 그리고 최근에 '아몬드'도 읽었는데  청소년 소설이 주는 풋풋함도 좋고 너무 깊지 않은 듯하면서 잔잔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다.


책은 주로 아침에 일어나서 읽거나 퇴근하고 읽게 된다. 매일 30분 책 읽기는 꼭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책은 항상 주위에 널어놓고 있다. 직장에서도 틈나면 읽으려고 한두 권을 꼭 가방에 넣어 다닌다. 하지만 사실 직장에서 한가하게 책 읽고 있을 시간은 별로 없기에 의욕만 넘칠 뿐 읽지는 못하고 가방 속에 들고 왔다 갔다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혹시나 차 안에서 읽을 수도 있으니까.


간혹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을 만나면 카페를 찾는다. 라떼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진득하게 바라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요즘은 아이가 정기권을 끊어 놓은 스터디 카페를 찾기도 한다. 스터디 카페에 가면 커피도 무료로 마실 수 있고 알사탕도 좋아하는 맛을 골라 먹을 수 있어서 아이처럼 신나는 곳이다. 이런 외부의 물리적인 공간이 나의 독서생활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책을 좋아해서 시간만 허락한다면 언제든지 빠져들고 싶은 것이지만 나이가 드니 집중력도 저하되고 시력도 예전 같지 않다. 얼마 전 읽은 신경숙 작가님 에세이에서 나이 들어서도 좋아하는 책을 읽기 위해 당근을 챙겨 드신다는 글을 읽고 나도 매일 저녁 당근을 썰고 있다. 노안이 와서 안경을 벗고 읽는 경우도 있어서 정말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매 끼니 모든 요리에 당근을 넣어보는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있다. 모든 볶음요리에 당근을 상용화하고 당근만 채 썰어 올리브유에 볶아 먹기도 하고 당근 밥을 지어보기도 하고 저녁에 입이 굽굽하면 생당근을 토끼처럼 우물거리고 있다. 지금이 당근철인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당근이 달다.


당근까지 챙겨 먹으면서 책을 왜 읽는 것인가? 책 외에도 놀게 많은 세상인데 유독 책일까?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책은 다른 놀거리보다 깨달음을 주는 깊이 다른 것 같다. 물론 티비 드라마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고 인스타도 돌아다니고 유튜브도 기웃거리지만 밑줄을 긋고 메모하고 싶어지는 것은 책뿐이다. 단 한 줄의 문장에도 하루 종일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책뿐이기 때문이다. 





© olenkasergienk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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