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책방에서 찾은 한 줌의 행복

by 산호

오랜만에 공연을 보기 위해 강릉에 들렀다. 이왕 가는 김에 가보고 싶었던 북카페를 먼저 찾았다. 한적한 시골길에 위치한 시골책방의 이름은 상큼한 "자몽"이다.


세상 조용히 동면 중인 논두렁을 마주하고 있는 시골책방 자몽은 근사한 한옥집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들어간 책방엔 남자 사장님이 마중해 주셨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고 조용하고 따뜻한 실내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 방문한 책방 안을 잠시 둘러보다 먼저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는 다락으로 올려주신다고 했다. 책꽂이에는 소설책도 보이고 동화책도 보였다. 1층의 책들을 다락에 올라가 볼 수 있는지 여쭤보니 1층의 책은 판매하는 책이라 곤란하고 다락에 있는 책은 그냥 읽어도 된다고 하셨다. 1층을 구경하고 다락에 올라갔다.




햇살이 드리운 다락은 외할머니 집에 온듯한 착각이 들었다. 뭐랄까 어서 오라며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는 할머니의 미소가 녹아있는 공간 같았다. 창가 유리창을 채운 손글씨 메모들과 아기자기한 작은 엽서그림들, 그리고 정면에는 오래된 LP판과 턴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의 은밀한 서재와 플레이리스트를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LP판도 보여서 신기했다. 퀸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동물원!





그리고 유독 들어오던 추천 책 리스트. 책방을 다녀간 이들의 추천 책 목록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이곳의 보물이다. 한눈에 봐도 반가운 책들이 눈에 띄었다.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마스다 미리의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그리고 나의 인생책이기도 한 스토너,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책은 양귀자의 모순까지. 모순은 얼마 전 읽은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눈물을 훔친 책이기도 했다.


나도 추천 책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 맘 같아서는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추천하고 싶었는데 다른 이들처럼 멋있게 추천 내용을 쓸 자신이 없어서 그냥 두었다. 목록을 보니 내가 읽은 책이 반,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 반 정도 되었다.


혼자 책방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어른들은 모두들 장에 가고 홀로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가 감춰놓은 꿀단지를 찾듯 혼자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창가에 붙어있는 메모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여름휴가를 왔다 간다는 딸의 메모가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되면 나도 딸아이와 다시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방지기와 손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 혼자 조용히 머물다 가기 좋은 공간, 뭔가 세상과 단절되어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 정말 오랜만에 머리 비우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작은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딴짓하느라 공연시간이 다되어 책은 읽지 못하고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을 서둘러 구입하고 나왔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고 말이다. 비좁은 시골길을 돌아 나오며 생각보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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