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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석 Oct 05. 2024

택배기사님의 핸드폰

상대적인 무게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후 11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택배 기사님이 지금 시간까지 가득한 손수레를 이끌고 남은 택배들을 배송 중이셨다

지치신 모습, 풀려있는 신발끈

고된 하루를 보내셨을 기사님께 말없이 감사함을 건넸다


기사님은 커다란 스티로폼을 끌어안으신 채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시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셨다

나도 그 뒤를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기사님께서 층수를 누르기 불편하실 것 같아 몇 층을 가시는지 여쭤보려다가 마음만으로 남겨둔 나는 등을 기댄 채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겼다.


조용한 적막


그리고 잠시 뒤 밝게 빛나는 기사님의 핸드폰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기사님의 핸드폰으로 향했고 기사님의 핸드폰 화면에는 저장되지 않은 010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왜 이렇게 택배가 안 오냐며 전화를 걸었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기사님은 지친 표정으로 가벼워 보이는 어쩌면 너무나도 무거운 핸드폰을 겨우 들어올리시곤 전화를 받으셨다.


기사님의 핸드폰 너머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택배가 왜 이렇게 안 와요?? 지금 시간까지 안 오면 다 상하는데 ....”


내 예상이 맞았다

기사님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신다.


지친 기사님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저라고 지금까지 일하고 싶겠어요? 지금 토요일 밤입니다. 저도 빨리 퇴근하고 싶지 않겠나요?”


아주머니와 기사님의 대화가 오갔다

아주머니의 택배 상자 안에는 무언가 ‘신선한’, 상해서는 안 되는 게 들어있는 것 같지만

기사님의 입장에서는 그저 커다란 상자에 불과하실 것이다.


기사님께서 누르신 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열린 문이 닫히지 않게 손으로 잡아드릴 수 있는 것 뿐이었다.

기사님은 한 손에는 스티로폼을 반대 손에는 핸드폰을 그리고 어깨에는 거대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시곤 엘리베이터를 나가셨다


나는 기사님께 조심스럽게 말씀을 건넸다


“고생 많으십니다”


통화를 하는 핸드폰 방향으로 건넨 탓인지

나의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수레에 가득한 택배를, 기사님의 차에 보란 듯이 남아있는 수많은 택배상자들을 전부 배송하신 채 편하게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23시 26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다


1층에 도착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사님의 수레가 아직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가득인 수레였다

오늘 기사님의 하루는 유난히 무거우셨을까

유난히 무거운 하루실까

왜인지 모를 죄책감에 내 걸음까지 무거워졌다.


거짓된 무거움일까

내가 감히 무겁다는 표현을 해도 괜찮을까

무게 또한 상대적이라면

나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내가 짊어진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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