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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한 Nov 14. 2024

직장 상사와 회의실

특명! 회의실을 예약해라

** 직장 생활을 하며 겪은 경험들을 글로 풀어내며, 첫 사회생활을 하는 신입사원들이 이 글을 읽고 각자의 조직에서 잘 적응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적는 글입니다. **



 본사로 발령받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조금씩 사수와 합을 맞춰 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팀장님께서 지나가시는 말로 내 사수에게 "우리 오후 회의 때문에, 회의실 예약 좀 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셨다. 내 사수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1분 정도 지났을 때 내게 말했다.


 "팀장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걸 네가 들었으면 알아서 회의실 잡고 예약해야 하는 거야."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본인도 손발 있는데 왜 내가 회의실 예약을 해야 하는 거지? ( 그땐 그저 철없는 MZ에 불과했다.. ) 그래서 어찌어찌 회의실 예약하는 시스템에 들어가서 어찌어찌 오후 시간에 비어있는 회의실을 잡았다. "사수님. 회의실 예약 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마자 바로 혼났다.


 "너는 이 회의에 몇 명이 참석하는지 아니? 그리고 회의 주제는 무엇인지, 누가 회의에 참석하는지, 어떤 회의인지 생각하고 예약을 한 거니?"


갑자기 속사포처럼 내게 쏘아대는데 당황스러우면서도 억울했다. 아니 그냥 회의실 예약 하라며...


 신입사원 티를 벗지 못해 생각도 많이 짧은 시기였고, 아직 회사에서 사수/부사수와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던 때의 철없는 에피소드다. 지금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회의실 예약부터 그에 필요한 준비까지 모두 끝마친다.


 우선, 위의 에피소드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살펴보자


1. 사수/부사수 관계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는 군대로 따지면 저격수와 그가 좋은 저격을 할 수 있게 옆에서 돕는 관측수와 같다.

관측수는 저격수가 목표를 저격할 때 온도, 습도, 바람의 방향 등 저격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확인하고 목표를 확실히 저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저격수는 메인 업무인 저격 외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 없이, 저격에만 신경 쓰면 된다. 이를 사수/부사수 관계에 대입하면 사수가 해당 업무의 메인 핸들러고, 부사수는 한조가 되어 메인 핸들러가 업무를 잘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인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며, 이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즉, "회의실을 예약해라"라는 짧은 문장에는 "내가 회의를 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 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2. 모든 업무의 기본 : WHY?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이 업무를 왜 하는 거지?'라는 WHY?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은 큰 프로젝트부터 작은 회의실 예약까지 모든 업무에 기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일을 대하는 사고방식이다. 위의 에피소드처럼 WHY? 질문을 하지 않으면 회의실을 예약하라는 말에 예전의 나처럼 그냥 아무 데나 빈 회의실을 예약하는 참사가 빚어진다. 하지만 WHY?라는 질문을 던진 후부터는 달라진다.


[ WHY? 질문의 선순환 프로세스 ]
 
나 : 왜 회의실을 예약하는 거지?
 > 목적은? 팀장님의 월 전략 회의
 > 그렇다면 인원은? 팀 전체가 아닌 선임 6명만 참석
 > 회의 시간은? 1시~2시까지 라면 앞뒤 30분 정도 여유 있게 회의실 예약
 > 선임 6명과 회의할 주제 및 관련 유인물이 있나? 미리 자료를 인쇄하여 세팅해 둔다.
 > 혹시 미리 음료를 세팅해두어야 하는 걸까? 사수에게 물어본다.
 > 기타 세팅해두어야 할 것이 있을까? 사수에게 물어본다.

사수 :  오? 이 녀석 신입이지만 업무를 하는 센스가 있는데?


 "회의실을 예약해 줘"라는 짧은 문장에는 사수/부사수 관계에 대한 개념 및 업무를 대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회의실 예약은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닐 수 있으나, 기본 중의 기본이며 이 업무 하나로 그 사람의 업무 센스를 알 수 있다. 또한, 사소한 업무이나 신입답지 않은 세심함을 어필할 수 있으며, 업무를 지시한 사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위의 글을 읽고도 아직도 그깟 회의실 예약이 뭐길래 대단한 것인 양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거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럼 단순히 생각해 보자. 본인이 아랫사람에게 회의실 예약해 달라는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이후 모든 게 알아서 세팅되어 있다면? 안 그래도 팀장이나 임원이 주는 업무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은데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결론은 "회의실 예약해 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아래의 것들을 물어보자

 - 어떤 회의인가요? ( 회의의 목적 파악 )
 - 몇 명이 참석하시고, 누가 참석하시나요? ( 경우에 따라 임원 혹은 팀장일 수 있음 )
 -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회의가 진행되나요? ( 여유 있게 앞뒤로 1시간 ~ 30분 정도 회의실 예약 )
 - 회의 진행 시 필요한 유인물이 있을까요? 인원수에 맞게 미리 인쇄해 두겠습니다.
 - 필요시 음료를 인원수대로 세팅해 둘까요? ( 외부 업체 미팅의 경우 음료 세팅은 거의 기본 )
 - 혹시 더 세팅해둬야 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 계절에 따라 에어컨/히터를 미리 세팅해 회의실 내 온도를 맞춰둔다면 센스 만점 )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생각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사수 혹은 주변인에게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 그로 인해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보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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