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예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하면 금세 맞추던 눈을 내리고 아, 그렇군요 한다. 예술가의 엄마는 어른들의 속물 뚝뚝 흐르는 눈빛을 바로 읽어 낸다. 아이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아, 네. 그럴 리가 있겠냐는 눈빛도 초광속이다. 정말입니다. 이런 말, 사실 필요하지 않지만 엄마라서 그냥 삼키려니 참 힘들다.
공들여 퍼즐을 맞추듯 세상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이는 그저 최선을 다한다 한다. '그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내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힘을 준다. 나도 아이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의 '지금'을 사느라 아이의 '미래'를 희생했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지난 몇 년간이었다.
코로나 3년을 고스란히 견뎠으며,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독립하겠다는 대학 입학 때 결의에 찬 선언을 하고 한참이 지난 이제야 자신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 유지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가는 아이다.
"엄마, 제대로 사는 게 쉽지가 않네."
"응, 사실은 그렇게 느낄 때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야."
예술가가 되고 싶은 아이, 예술 창작을 위한 상상을 허락하는 여유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다.
일반적으로 안정된 직업으로 알려진 일들은 관심도 적성도 없다는 아이, 하나씩 하나씩 아이는 자신을 쌓아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세상을 향한 내 아이의 목소리가 작품이 되어 나의 거울이 된다. 엄마, 이렇게 살아가면 어떨까요?
며칠 전 G밸리산업박물관 기획전시실, 성장통이라는 제목의 전시에 다녀왔다. 성장통의 지근함.
네 개의 기획전시 작품들 중 조재영 작가님과 아티스트 그룹인 지지추의 협업 작품, '끝나지 않는 이야기 Never Ending Story'는 내 아이가 지나온 삶의 여러 가지 점과 선, 그리고 그들로 만들어진 면들이 모여 미래를 채우는 상상을 하게 했다.
그 면들에 모인 글씨의 선을 따라 읽으면서, 그 면들에 넓게 펼쳐진 그림 속의 점들을 가늠해 가며, 영상의 손짓에 고개를 기웃거리며 오래 빠져들었다.
너의 현재는 나의 지금이구나 그리고 미래가 되는구나. 너의 성장통은 또한 나의 성장통이다.
예술가의 작품들은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을 꿈꾸게 한다. 머물게 한다. 그리고 다시 고개 들고 걸어가게 한다. 성장통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리는 통증 말고도 결국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길을 재촉해야 하는 동기를 얻는 그런 작품, 내 아이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인 것이다.
아이의 마음과 손이 거쳐갔을 작품들은 큰 창으로 새로운 세상을 연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것인지 나는 아이의 작품들을 통해 소망하게 되고 한번 더 옷깃을 여미게 된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아이가 열어주는 미래의 문을 알아볼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적 잠재력이 가득한 아이들의 세상 보는 독특한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에는 항공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아이가 있다.
영어 질문에 수학적 계산을 하며 자기가 답을 맞힐 확률을 말하며 미소 지을 때 나는 하마터면 혼낼 뻔했다. 속물근성을 드러내 화내지 않고 오! 했던 그 순간, 아이의 눈이 빛났던 것을 기억한다.
아이 삶을 바라보게 한 중2 때 작품
내 아이의 오! 순간은 중학교 2학년 미술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다. 아이가 유토로 조물조물 만든 손 작품을 보시더니 너는 조소가 팔자구나라고 하셨단다.
이 순간, 아이가 스스로 미래를 바라보게 해 주었고, 바로 지금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해 주었다고 아이는 회상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 멋지지 않은가.
10년 넘게 먼지를 맞으면서도 꿋꿋한 불끈! 내가 항상 에너지를 받는 아이의 첫 조소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가인 아이의 성장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성장이란 건 전염성이 강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가는 성장통, 지금 나는 기분 좋은 성장통 중이다.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