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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06. 2023

제부도에서

행복이 눈물과 함께 하더라도 고개를 들고

연휴의 끝은 예민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다 보러 갈까?' 내가 너무 내 것에만 파묻혀 세 평남짓 나의 책방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빼꼼 연 문 사이로 목소리가 들어왔다. 제사나 차례를 지내고 나면 나는 투명인간이 된다. 사라지는 마술로 내 세상으로 숨어들어 현실의 냄새와 힘듦을 털어내곤 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이 떨리는 구절이 있을 때 귀퉁이를 접어두고 생각에 빠지거나,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크게 들숨 날숨을 느껴 보기도 하고, 조시 그로반을 듣거나 눈을 감고 재즈를 듣다가 잠시 꿈을 꾸기도 한다.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의식들이다.


엄마가 모자라요. 우리 가족은 모자라다는 표현을 쓴다. 내가 처음 시작했다. 당신이 모자라. 일찍 들어오라는 잔소리 대신 쓴다는 거 다 알지만 메신저 사이로도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도 빈 눈으로 거실을 돌아다녔으리라. 내가 가족을 외롭게 만들곤 한다는 거 안다. 내가 혼자로 잦아들 때 기꺼이 허락해 주는 사람들, 사랑한다. 너는 엄만데 왜 엄마를 못하니. 너는 아낸데 왜 아내를 못하니. 매번 자책하지만...


운전대를 잡았다. 다른 자유, 새 길을 밟고 달렸다. 길을 모두 디디는 건 불가능하다. 언제나 새 길 위에 새롭게 달릴 수 있다. 정오의 흐린 하늘에서 비가 후두둑거렸다. 요즘은 내가 가는 곳마다 비가 오는 것 같다. 눈물인가. 오래전에 갔었던 곳, 새로 생긴듯한 길로 네비가 안내하는 통에 무척 낯설다. 다른 길, 새로운 모험이다.


제부도로 이어지는 패어지고 지친 도로에 도착했을 땐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두 줄의 많은 차들이 천천히, 도로가 주차장인양 양쪽 경치에 넋 놓으며 늘어진 연휴의 끝을 즐기고 있었다. 차가 정체할 때마다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이 갯벌과 저 하늘이 맞닿은 곳에 솟아 있는 섬들이 인사한다. 구름 사이 햇빛이 은빛 줄기로 내려앉는다. 온 세상에 공평하게 행복이 내린다.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즐기는 거다. 제부도에 닿자마자 차를 돌려야 했다. 만조로 물길이 없어지면 4시간을 제부도에 머물러야 한다. 전자계산기 같은 남편은 벌써, 제부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 어떻게 4시간을 보내야 할지 시간별로 정한 모양이었다. 그 빽빽한 계산기로 들어가기 싫어서 꼭 나가야지 하며 마음이 허둥대고 있었다. 통제시간 3시, 우리는 2시 53분에 도로에 들어섰다. 나는 자유다.

저 끝 제부도가 작아지고 도로가 잠겼다. 검게 출렁거리는 바닷물이 서늘한 공포로 다가왔다.


지금껏 살며 마주쳤던 불안과 눈물을 기억하며 저 바다에 말건다. 우리도 너처럼 잘 견디며 살았다고 그리고 기억하겠다고. 어디서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 눈물을 견딜 수 있는 힘, 우리는 하루 짧은 여행에서 이 모두를 가졌다.


달이 끌어다 준 큰 바다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산사춘 한 병에 만취해서 노래를 불렀다. 넬의 기다린다를 들었다가 선미의 가시나로 갔다가 박효신의 야생화까지 짬뽕 선곡이다.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났다. 고개를 얼른 뒤로 젖혀 눈물을 귀 뒤로 몰래 삼켰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제부도에 간다.



사진 - 나의 연휴 마지막날 제부도에서, 202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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