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는 신호와 살아가는 흔적
a sign(신호), 수요일 새벽에는 일주일간의 흔적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표현들을 골라낸다.
하나의 표현으로도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그런 농도의 마음을 다시 복습한다. 사는 게 왜 이렇게 반복일까 싶다가도 내게 온 중요한 감정들, 나를 흔드는 어떤 신호를 꼭 붙잡아서 고정해 두는 의식을 한다. 잘 살 거야.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짐하는 시간이다.
사람들과 마주하러 나가는 건 큰 용기다. 운전대를 잡고 신나게 달리다가도 유턴할까 그런 갈등에 앞이 하얘진다. 뜨겁게 커지는 심장을 누르고 서로 눈인사 미소 인사를 하면서 거봐라 괜찮지? 한다. 너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사람들이 말건다. 그들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신호인가 보다. 새로운 시작이라 하자.
어떤 순간이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저질러 본 적 없는 일을 알코올 기운에 덜컥하고는, 실제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수백 번의 이불킥을 한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도 전에 신호등이 켜지고 초록 또는 노랑으로 다가오는 빛에 조금은 안도한다. 빨강은 아닌 것 같아서. 나의 직진을 허락해 주라. 통증을 덜어줄게.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온다. 매일매일. 선택을 하고 나면 집중하며 몰두하며 단단한 시간으로 살게 된다. 글쓰기라는 신기한 치유의 힘을 맛보고 있다. 사 개월쯤 거의 매일 쓰고 있다. 부끄러워 그냥 대강 빨리 덮고 싶은 글도 쓴다. 배짱이다. 그런 날은 부끄러운 글을 덮는 다른 글을 얼른 써서 발행한다. 요망한지고!
매일 읽고 생각 꼭지를 골라내서 손바닥만큼의 일기식 영어 끄적거림을 하고 있다. 어떤 때는 눈물이 핑 도는 내 가여운 마음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런 날엔 그런 감정들이 시간에 희석될까 아까운 생각이 든다. 나중을 위한 꼭지들인데 지금 느꼈던 감정이 다 바래져 날아가 버릴 것 같다. 고민.
새벽 필사는 나의 생명을 켜는 일이다. 하루를 비는 일이다. 일주일의 힘, 한 달의 영혼을 저축하는 의식이다. 끊임없는 손떨림과 미세한 불안들을 잠재우려는 투쟁 같은 거다. 내 눈에는 여전히 한숨 나오는 순간들의 모음이지만 지난 16주 동안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나아졌으리라. 꾸준함은 생각보다 많은 선물을 준다.
싹둑싹둑 앞머리를 잘랐다. 가위가 서걱거리며 이마를 지나가는 소리를 좋아한다. 새롭게 나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가족이나 친구들은 한동안 '너 왜 그랬어' 표정을 한다. 내 앞머리가 재미있는 게 신난다. 나의 학생들에게, 'How do I look? 어때 보이니?' 했을 때 오늘도 'Umm... 음...'이라고 하려나? 하하!
뭘 해도 이상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산다. 세상에 나갈 때마다 나에게 한마디 한다.
'흔들리지 마!'
사진 - LALACREW 16주간의 왼손필사 흔적들 20231108 흔들리지 않고 직진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