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Nov 07. 2023

고마운 고난

0513

매끈하게 연기하고 자리에 앉은 지망생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다.

현란한 테크닉에 그럴싸한 스타일은 그럴 만도 하겠다는 지지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지켜본 동료들의 부러움을 코팅한 경외의 시선은 이를 더욱 부추긴다.


잘했어! 그런데 너의 연기에는 장애물이 없구나!

이미 아는 길을 가고 있으니 갈등이 자리할 틈이 없어서 감흥이 쉬 휘발되는 걸!

상황은 장악하되 처음인 것처럼 말해 보겠니?


계획하되 설계되지 않은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이 네가 지금 하는 '언어의 놀이'일지도 몰라.


순탄하고 곧은 길이 이상적이라 여긴 적이 있다.

한 번도 a에서 b까지 굽이쳐 가지 않은 기억이 없다.

장애물은 수시로 들이닥쳐 길을 가로막고 더 나아가지 말라 종용하곤 했다.

자주 타협했고 그의 조건은 까다로워서 쉽게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슬플 때보다 창피해서 울 때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장애물을 간편하게 시련이라고 부르고 원망한 지난 시절들을 더듬어본다.

산도를 힘겹게 스스로 돌파하고 나오지 않고 외부에서 타인의 도움으로 제왕절개하여 나온 아이처럼 작은 장애물에도 취약한 면역력을 지닌 듯했다.

고난은 고난 그 자체의 외연에서 벗어나 진피까지 침투하는 통찰이 작동하면 고마운 단내가 난다.

이다지도 삶의 참맛은 고난이라는 껍데기로 꽁꽁 싸매져 있는지 모호하고 고약하다.


고난은 참 삶의 나이테다


육체의 나이테는 사계절이 한 사이클이지만 인생의 나이테는 고난이 한 사이클이다.

고난 없이 나이 먹기를 두려워하리라.


어쩌면 난 지금의 고난들을 고마워하고 있다.


https://brunch.co.kr/@voice4u/177


매거진의 이전글 찰나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