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집(2015)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대학 다닐 때 시집을 한 두 권씩 가방에 들고 다녔다. 외로울 때, 벤치에 앉아, 카페에서, 흔들거리는 버스 구석에서도, 시를 읽으며 혼자 사계절을 다 겪곤 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아치는 시간에 밀려다니며 시를 읽지 못하게 되었지만, 가끔 대학 시절 손으로 꾹꾹 눌러 남긴 시들을 읽으며 그때 감성을 돌이켜보곤 한다.
지난해 나를 아껴주는 친구로부터 받은 나태주의 '선물'이라는 시는 지금도 나의 침대 맡에 서서 나를 위로한다. 친구의 수려한 손글씨도 내 마음의 치유다. 마음이 허전할 때 나를 구해준 시들을 가끔씩 낭송해 본다.
나태주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인터넷에 자주 독자들이 인용하는 시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라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거나 외롭거나 눈물을 꾹 참아야 할 때 시를 읽나 보다. 시 한 편마다 눈물이 흐르고 회한이 느껴지고 애틋함에 마음이 짠하다.
짝사랑이나 외사랑의 시(詩)들은 간결에 응축된 슬픔이 진하다.
내가 너를 (p.12)
... <중략>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첫 시가 '내가 너를'이다. 그냥 한숨이 나왔다. 슬프다.
보고 싶은데 입속에만 있는 말, 눈물을 글썽이며 마시는 술, 꿈에서도 항상 전화하고 받는 상상 등 사람들 사이의 감성들을 밝힌다. 하지만 꽃이나 난초, 계절, 나무 등에 관한 자연에서 보는 기쁨을 보여주는 시들도 좋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 (p.83)
... <중략>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쓸쓸함과 허전함이 아니었던가. 솔직함, 청결함, 겸허라니 시인의 눈은 어느 깊이에 있는 걸까.
겨울이 막 시작되었다. 시에 나오는 감성을 하나씩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눈 내리는 날 하나씩 꺼내 다시 새겨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