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면 오는 것들
뜨겁게 보내서 밀려오는 허전함, 좋은 시간을 보낸 허탈함이 끝이라는 이름이다. 진하게 채우던 그 시간들이 파도처럼 떠나자 내게 남은 것은 똑같은 농도를 유지하려는 삶의 몸부림이다. 그토록 공들인 시간들을 이제는 무엇으로 채울 건지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는 눈으로도 느껴지는 심장 박동을 모른 척해야 한다.
밤 새 목표를 이룰 작정이었다. 실패했다.
식물의 촘촘한 모양과 생리를 읽으며 세상에 어쩜 그렇게도 세심하게 관찰을 할 수 있는지 그가 존경스럽다. 세상은 눈을 가까이 대고 관찰하면 할수록 당황스러운 새로움에 몸서리치게 된다. 그렇지만 나처럼 눈이 약점인 가여운 다윈.
그의 그런 인생은 사람에 골몰하며 고민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관계니 뭐니 나의 흐르는 눈물을 금세 가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진하게 사는 그는 연구하는 그 대상이 친구이고 시간이고 삶의 끝이 된 걸 거다. 나도 다시 혼자로 돌아가야 할까. 공부하고 죽자고 연구하고 깨우치고 탄식하며 논문을 쓰던 그때가 그립다.
그리움에 흐르는 눈물은 내 눈을 더 마르게 했다. 눈물이 나는데 왜 눈은 건조할까. 자정이 다가올수록 불안함도 더하다. 조금만 더... 시간의 속도, 확장과 축소라는 시간의 시각적인 모양들을 텍스트화한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매트릭스의 시간 놀이를 다시 생각해 내며 아, 이제야 알아내고 탄성을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다.
전속력으로 지나가다가도 슬로 모션으로 짧은 시간 안에 꽂히는 수많은 생각들이 앙금으로 가라앉는다. 그런 것들이 삶을 꽉꽉 채우며 진해지는 걸 거다.
어제의 에스뿌레쏘와 오늘의 에스뿌레쏘가 다르다. 맛도 진함도 산도도 잔도 접시도 둥둥 떠 있는 기름기도 다르고 무늬도 다르다.
두껍고 진한 에스뿌레쏘는 광교에 있고 마음을 흔드는 무늬로 아우성치는 에스뿌레쏘는 서천에 있다.
수업 하나를 끝내고 나면 여전히 그 허전함을 채울 길이 없다.
지금은 에스뿌레쏘가 나를 위안할 뿐.
사진 - 서천 에스뿌레쏘 20231210
#라라크루 (2-6) #라라라라이팅 끝을 같은 온도로 끌어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