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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an 15. 2024

버킷리스트, 파이널

한강 그리고 다리들

버킷리스트를 제대로 가져본 적은 없다. 어떤 한 가지가 떠오르면 그냥 할 뿐이다. 활주로로 고도를 낮추는 기내에 앉아 무심코 들여다본 바깥 풍경은 그간 마음속에 꾹 참고 있던 한 가지 욕망을 끄집어냈다. 위에서 내려다본 한강의 전경에 드디어 내게도 허락되나 보다 막연한 바람에 흥분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좋아하고 특히 한강을 좋아하고 한강 다리들을 좋아한다. 문화가 넘치는 곳에서 골라가며 나를 즐길 수 있어 좋았으며, 길고 길고 넓고 넓은 한강을 남북으로 가로 걸쳐 이어주고 있는 다리들이 고마웠다. 걸어서 건넜던 다리들 버스를 타고 또는 운전하며 올려다보던 다리들이 가슴속에 가득하다.


파란 동작대교를 시원하게 건너며 옆으로 지나는 지하철과 속도를 맞춰도 보고, 자유로로 이어지는 단아한 가양대교에 고마워도 하고, 한강 야경에 넋을 놓게 하는 청담대교를 그리워한다. 광진교 카메라 속도위반 과태료에 억울해하며, 자연을 찾아 동해로 향하는 미사대교에 시원했던 시간들이 내 삶에 수(繡)로 남았다.


가난한 다리에는 속도 단속 카메라가 엄격하고 부자 동네 다리는 카메라가 공갈인가, 대강 대강 기억에 남은 이상한 차별의 불안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어느 다리에다 속도위반 과태료를 많이 냈는지 기억을 더듬기도 한다. 같은 다리에서 과태료 딱지 두 번 받을 때 얼마나 속이 쓰렸던가.


그런 한강 다리들을 꼼꼼히 밟고 싶은 이상한 욕심이 내게 남겨진 사소한 소망이다. 서울에서 흘린 눈물이 나를 교외로 몰아내고 먼 곳이 되어가는 나의 고향 서울을 한 번은 찐하게 디뎌보고 싶다.


내가 태어난 영등포 중앙산부인과랑 가장 가까운 다리를 건너며, 내 학생들을 만나러 가장 많이 건너 다녔던 한남대교에 내가 왔다 어디 보자 말을 걸어 보며, 눈으로 마음으로 잘 새겨두고 싶다.


한라산을 오르고 한강을 그리워하고 한강 다리들을 하나씩 건너보는 삶으로 나의 시간들이 여유롭게 정리되면 좋겠다. 나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소망을 향해 지금부터 한 걸음씩 디뎌볼 작정이다.


바라는 곳에 수를 놓으며 살라는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내 이름 희수(希繡)를 잘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1월이라 그런지 다짐과 작정이 홍수 같다.


파이널이라 하고 의지를 더 다져본다.



#라라크루 (3-8) #라라라라이팅 나의 사소한 소망을 시작하는 작정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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