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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r 07. 2024

모험의 시작 /mohəmeʃiʒak/

1주차 - 첫 수업의 흥분되는 퍼즐 맞추기

이상적인 수업을 위한 갈망이 컸나 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길이 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수업계획서가 있고 그것을 무리하게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계획 속의 여백을 잘 포착해 내어 어떻게 '잘' 꾸려갈지를 생각하는 것은 첫 수업의 긴장과 모험이다. 이번 학기 여백은 부교재로 꾸려갈 생각이다.


기초 설문으로 학생들의 심리와, 간단한 단락의 요약을 통한 언어 유창성, 수업에 대한 기대, 그들의 미래 직업과 진로를 읽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단 마친 기초 설문 항목들을 한 학기 동안 어떻게 수업에 응용할지 소개하는 것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


학생들의 전공과 다양한 지역 언어, 외국인 학생들의 열의와 수업 내내 반짝이는 눈빛을 읽으며 내가 더 흥분했다. 학생들의 미소와 웃음소리, 움직이는 몸짓만 봐도 강의실 내 공기의 온도를 알 수 있다.


철학과 인문학의 꼭지를 들어 올리기만 했다.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를 언급하며 첫 모험의 문을 열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요? '배움'이다. '덕'이다.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오래전 나의 은사님께서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하셨었다. 그때 난,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었고, 선생님께선 끄덕끄덕 웃으셨다. 나는 그때의 내 대답이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어서 아, 그게 '나'구나 하며 나 자신을 새로 발견했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학생들이 보낸 설문의 기대 단어들이 나를 더 가슴 뛰게 한다. 교양, 기회, 관점, 이해, 열망, 향상, 교류, 활용, 긴장, 관계, 탐구, 학문, 언어, 평생, 습득, 지식, 심화...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들인지! 이 기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한 학기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과 열의, 태도가 지금까지의 다른 학기보다 높게 느껴졌다. 그러면 준비한 계획 중 비교적 사소한 것을 멈추고 수업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발표 팀을 짜고 흥미 있는 주제에 맞추어 바로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 준비를 하도록 했다. 팀마다 돌며 피드백을 주어 기본 발표 계획을 정리하는 학기는 처음이다.


학생들의 발표 계획을 들으며 내가 준비한 수업 계획도 머릿속으로 바쁘게 변경한다. 내가 흥미롭게 이미 준비한 자료를 학생들이 스스로 호기심을 채우는 자료로 양보하고 나는 다른 새로운 자료를 찾는 것이다. 내가 준비한 주제를 몇몇 학생들이 언급하여 놀라면서도 기뻤다.


계획했던 이메일, 보고서 작성 방법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자투리 시간에 언급하기로 하고 철학-인문학 논문 중 이해가 쉬운 부분들을 읽어 오도록 과제를 주었다.


교재와 부교재를 필수로 구입하여 다음 수업에 반드시 가져오도록 했다. 아이들이 분석하고 읽어가며 사고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면서 피드백을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성실하게 깊은 생각으로 좋은 반응과 결과에는 추가 점수를 주는 것이 나의 평가 정책이다. 감점보다 가산점. 어차피 상대평가가 필수인 상황에서 동기부여의 핵심이기도 하다.


'발표 주제의 구체적 논의'라는 유래 없는 첫 시간의 모험에 이어 부교재도 다른 방식으로 시작했다. 팀별 논의 시간이 다소 길어져서 부교재 목차 활동을 두 번째 모험으로 변경하여 과제로 해오도록 했다. 수업에서는 부교재 표지 소개와 읽기를 했다.  


팟빵의 '성우의 언어'가 화술서적으로 소개되는 한 부분을 듣게 하고 싶었지만 계획을 바꾸어 표지 뒷부분 프롤로그의 발췌 부분을 내가 읽어 주었다.


나의 수업에서 무게를 두고 중요시 여기는 '언어의 소리'를 학생들이 설문에 제출한 직업/진로와 연결하고, 수많은 직업 중 소리와 평생 함께하는 직업인 '성우'를 연기자에서 예술가로 수렴시키는 과정을 학생들이 같이 하면 좋겠다.


과제는 부교재의 목차만을 보고 또는 부교재의 관심 있는 부분을 읽고, 저자의 성우에 대한 관점을 이해한 후 학생들 자신의 직업/진로에 비추어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 오는 것이다.


성우가 가야 할 '예술가'로서의 지향점을 바라보게 하면서 학생들 자신의 직업을 '소리'라는 관점, 그리고 소리가 이루어가는 그들의 미래 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고 싶다. 부교재의 철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요소들이 뜬구름처럼 다가가지 않도록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야 한다.


성우는 '연기'만으로 규정할 영역인가를 의심해봐야 한다. 그러기에 '성우는 무엇이다'라는 가치판단보다는 '무엇도 성우이다'라는 문제제기로부터 다가가는 귀납적 접근이 풍부한 가능성과 가치를 생산한다. 성우를 연기적인 이야기로만 풀어갈 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성우를 예술로부터 이탈하여 기술/기능의 영역으로 가둬버린다. 성우는 연기자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들의 발산이 집약된 무언가'로 보아야만 확장가능성을 지닌 예술분야로 변모시킬 수 있다. 성우는 단순한 연기자라기보다는 경계에서 자류로운 예술가다. - 프롤로그 (p.19-20) 중에서


첫 문장을 읽을 때부터 학생들의 눈빛과 귀기울임이 다르다고 느꼈다. 아마도 이번 학기는 학생들을 통해 내가 더 많이 배우게 될 것 같다.


수업 후 한 외국인 학생질문으로 다음 시간에 다시 함께 살펴볼 부분을 밑줄로 표시해 두었다. ['무엇도 성우이다'라는 문제제기]라는 부분을 더 이야기하려 한다. 이는 가능성, 발산의 집약, 확장, 예술, 예술가로 이어지며 '성우의 언어'라는 부교재의 전체 메시지를 아우른다.


나는 '무엇'으로 볼 수 있는 상황적 미메시스를 학생들이 가질 직업/진로로 어떻게 응용 가능할지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 직업이 가질 소리, 상황, 태도에 동화하는 깊이를 한 학기 동안 언어학의 이론과 응용을 다루며 들여다보도록 할 것이다. 결국 학생들 자신들이 겪어 나가며 어디쯤에서 어떻게 착륙할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첫 수업 후 박수를 받은 건 또 처음이다. 더 무거워진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Moana(2017)의 한 장면을 기억하며 산다. 'I'm still falling~!'


나는 뭔가 시작되면 그 끝 한계가 너무 궁금하다. 그 존재의 전부가 궁금하다. 나는 이것을 나의 삶의 이유라 한다. 계속 움직이는 것,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 내가 가야 할 길을 잃지 않고 부지런히 사는 방법이다. 내가 떨어지며 본 어떤 경험을 수업에서 학생들과 어떻게 함께 할지 고민하는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다.


- 괴물의 나라로 들어가는 Maui와 Moana, 영화 Moana (2017)


나는 '성우의 언어'의 '책으로 묶으며(p.6)'에서 소개한 '마천루에서 떨어지고 있는 어느 건달(증오, 1995,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의 추락과 나의 'I'm still falling~!'을 반대의 관점으로 본다. 나는 떨어지는 과정이 중요하며 지금까지 괜찮지 않은 갈증으로 떨어지며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 강의 계획 드래프트: 주차-교재-부교재-주제-질문

▣ 2주차 메모 - 발표 주제/작성 피드백, 출생 전 소리 학습의 시작(TED), 프랑스/독일 아기 울음, 기원 가설, 과제(철학-인문학/성우의 언어 목차)

IPA(국제음성기호) 키보드 등 소리 전사 및 발음 자료

1. IPA 기호 (이미지) - 영어 자료 / 한국어 번역 자료

2. 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 (IPA) Keyboard: https://www.internationalphoneticalphabet.org/html-ipa-keyboard-v1/keyboard/

3. IPA Reader: http://ipa-reader.xyz/

4. 표준발음변환기 (한글맞춤법): http://pronunciation.cs.pusan.ac.kr/

5. 표준발음변환기 IPA 기호: http://pronunciation.cs.pusan.ac.kr/IPA_Table.html

6. 한글-로마자 변환기: http://roman.c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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