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20년, 비포 앤 애프터
20년 전에 끄적였던 글을 발견했다. 지난해 이글루스가 문을 닫고 백업한 자료를 뭉쳐서 보내주었는데 멍하니 클릭하며 따라가다 보니 뭔가 백업을 했긴 했더라. 20년의 간극, 비포 앤 애프터, 달라진 게 있을까.
생각나는 대로 살아보며 내가 요즘 안 하던 짓을 한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예기사를 읽는다. 싸이홈을 치장하고, 대뜸 버스 기사님께 '도토리 받아요?' 한예슬 따라 하다가 눈총 받는다. 총 맞은 충격으로 평소에도 잘 안 들어오는 싸이홈에 오케이캐시백으로 도토리 충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 날리고, 방명록도 푸짐히 써주고 허전히 돌아선다.
그리고 멀미를 한다. 나 요즘 왜 이러지?
맥스무비 시사회 신청하고, 그저 눈에 들어오는 영화 예약해 두고 친구에게 스케줄 비워두라고 통지한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시간을 초단위로 세면서 마음은 벌써 주차장에 가있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광화문에 내려갈 때 2단으로 내려놓은 기아는 벌써 잊어버리고 차가 왜 이렇게 안 나가냐 투덜대다 용산에 와서야 생각이 난다. D로 올리고. 이빠이 볼륨업해둔 셀린디옹 때문에 소방차도 경찰차도 벙어리 같기만 하다.
또 멀미끼가 있다. 우웩! 왜 이러지?
집에 가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소파에 늘어져서 TV 리모컨만 뜨겁도록 만지작 거린다. 재미없는 TV. 그래도 문득문득 한 50인치짜리 TV를 살까 안달쳐보기도 한다. 그럼 재미있어지나? 주방을 보면 쌓인 설거지거리, 높이 솟아있는 재활용 폐휴지, 페트병... 음식 쓰레기 냄새.. 아이, 신경질 나. 미치겠어. 뛰어내릴까? 아니야 너무 무서울 거야...
발표준비, 기말 프로젝트가 가득 쌓였다.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둔 책이 나를 비웃고 있다.
근데 내가 멀미가 난 단 말이야.
청하도, 매취순도, 산사춘도, 포도주도, 꼬냑도, 보드카도 시들해, 지겹단 말이야. 어휴, 씨...!
숙제하러 간다. 정말이야!
20년 전에도 이상했구나. 내가 싸이홈이 있었어? 도토리라니! 허무한 날의 하얗게 비어있는 마음이었군. 영화는 여전히, 근데 그땐 혼자가 아니었네. 사이드기어 안 풀고 액셀 밟는 건 여전하구나.
'이빠이 볼륨업?' 언어가 참... 지금은 가끔 볼륨업. 셀린디옹 대신 조쉬그로반, I'm alive. 대신 You're still you. 20년 후 나는, I'm still alive... 'still'을 붙들고 산지는 오래되었네.
아직도
여전히
그런데도
그럼에도
고요한
가만히 있는
바람 한 점 없는
놀랍게도 지금 나의 모습, still, still,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TV, 주방은 내 앞에서 사라지고 여전히 생명의 경계에 대한 갈증으로 할 일을 쌓아둔 채 게으름의 쾌락에 젖어 포도주, 꼬냑, 가끔 산사춘 두통을 맞는다.
20년 전 멀미는 지금도 나아지지 않고...
이런 것인가, 삶이란 게! 도돌이표 사이에서 한 줄기 흐린 빛이라도 찾게 될는지 불안, 불통, 불경스러운 시간 속에 떨어야 하는 게!
Still, 그. 럼. 에. 도. 불. 구. 하. 고! 여. 전. 히! 0.125에서 단호하게 1을 향해 가는 중이다.
Hold on and don't shed a tear. Where there was weakness, I found my strength.
- A New Day Has Come by Celine D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