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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r 15. 2024

시체, 부검의

生은 낯설고 死는 가깝고 有는 서럽고 無는 고통이야

시체가 되었으니 삶은 낯설다. 죽음이 가깝다 여겼을 때 돌아볼 것을 그랬지. 있음은 바로 비워지기 전이란 걸 알고 있었던가. 비우고 보니 그제야 텅 빈 고통이 비수가 된 걸 깨달았네.




살아 있는 사람을 못 견디는 사람이 있다. 갑자기 목이 움츠러들 때가 많다. 사람 소나기. 감정 소나기.


불규칙한 감정들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무리 조용히 살고 싶어도 그게 안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매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그 공포를 어떻게 다스리고 살 것인가.


나의 심리학 슈퍼바이저는 정신과 의학박사였다. 그에게 배울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사람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 갖는 직업'에 대한 것이었다. 그중 자신의 친구였던 한 의사에 대한 이야기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과 의사였던 그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틈 속에 그들의 변화무쌍한 감정과 언어와 몸짓을 겪다가, 공감과 이해가 너무 어렵고 괴로워 '시체 부검의'로 이직을 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삶과 죽음을 차가워진 피부로 갈라 그 죽음을 모두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두려웠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발산하고 영토를 탐하며 공기를 낭비하고 휘발하며 살지만, 차갑게 누워있는 시체는 모든 에너지와 그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자기 안에 품고 묵묵하다.


내가 만일 시체 부검의가 된다면 메스를 댈 때마다 통곡할 것이다. 도려내어 눈을 들이댈 때마다 더 철저하고 진중하게 그의 삶을 읽으려 발버둥 칠 것이다. 가만히 누워 겪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전해주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에 대해 써 내려갈 것이다.


어떤 사연으로 시체 부검실의 테이블 위에서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차가운 메스가 몸통을 Y자로 가른다. 새로 시작된 나의 이야기를 부검의에게 더듬더듬 고백한다. 부검의는 이성과 감성을 양손에 들고 조용히 대답한다.


Deep in the stillness 고요한 저 깊은 곳에서

I can hear you speak 당신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You're still an inspiration 당신은 여전히 영감을 줍니다.

Can it be that you are mine? Forever love 당신을 제가 가질 수 있을까요? 영원한 사랑

I cherish all you gave me everyday. 당신이 매일 내게 준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겨요.


Josh Groban의 To where you are가 흐르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부검의에게 내 안의 포 하나하나가 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PXnKt3Wclzo

쓰고 나니 장르가 모호하다. 로맨스를 쓰고 싶었는데 그로테스크로 빠진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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