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Aug 15. 2023

[시간] 새벽 힐링, 마지막 오늘 새벽

내일도 새벽이 올까요

새벽 다섯 시, 깨어 일어나 맨 발의 가벼움마저 방해가 될까 조심조심, 벽에 손을 끌며 어둠을 지나 주방으로 갑니다. 그림 액자, 책장, 한 칸 두 칸 세 칸... 그리고 냉장고, 커피 포트. 물이 끓을 때까지, 북쪽으로 난 작은 주방 창으로, 겨우 한 둘 불이 들어와 있는 저 먼 맞은편 사람을 상상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의 블커피를 머그잔 가득 찰랑거리며 곧 시작될 여명을 기다립니다. 왼손 필사를 하며 여전히 떨리는 글자들에 탄식하고, 잦은 미숙함으로 괴로운 저 자신에게 첫 말을 걸어요. 오늘도 겸손하게 지내야겠다.

천둥 같은 마음의 소용돌이를 누르며 제대로 사람 되려 100일 약속한 필사, 흔들리는 블루라이트 깊숙하게 보내고 나면, 아무리 획이 비뚤어도, 아무리 거칠게 글자를 고쳤어도, 하루를 지내야 하는 의식은 계속됩니다. 벌써 저를 다독이며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시간, 새벽의 위로를 받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베란다 문을 아주 조금씩 살살 밀어 엽니다. 심장 울림을 느낄 만큼 소리를 죽여보는 예민함, 오늘 제가 살아가야 할 감각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채 다 열지도 않은 문틈으로 훅 밀치는 공기와 마주합니다. 해가 뜨기 전 잔잔하게 퍼지는 하늘의 불그레한 열기, 제가 좋아하는 색으로 여명이 옵니다.


먼바다도 아닌, 겹겹 산 넘어도 아닌, 저 빽빽한 건물 실루엣을 타고, 답답하고 나지막하게 깔린 도시의 첫 공기가 제게로 달려옵니다. 오늘이 마지막 새벽일지도 몰라. 그러니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눈을 질끈 감고 하루의 강박이 그렇게 시작됩니다.


새벽은 내일도 올까요.

2022년 9월 24일 새벽 5시 45분, 천안호두휴게소

다음 새벽이 온다면 차 키를 챙겨 주섬주섬 모험도 좋을 것 같군요. 작년 그 어느 때처럼요.




한 시간쯤의 관대한 새벽 상상으로 오늘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내일, 새벽이 다시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라라크루5기 (1-8) #라라라라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책] Interpreter of Maladie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