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Apr 16. 2024

눈이 멉니다

멀리멀리 멉니다

겨울이 가버린 들판에는 눈이 너무 멉니다. 


휘날리는 눈 속, 울 목도리를 두르고 빨갛게 언 코에서 증기기관차의 스팀 같은 숨이 나가는 걸 보며 걷던 그 차가움이 좋았습니다. 겨울이 가자마자 다시 기다리는 겨울입니다.


에릭 로메르의 사계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그러니 겨울이야기(Conte D'Hiver)부터 시작합니다. 하나씩 천천히 숨을 살펴가며 쉬어보기로 합니다.


밖에는 비가 오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이 고픈 건지 까탈스러운 변덕과 청개구리 같은 점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그냥 지나갈 것임을 압니다. 눈길을 얼마나 주고 얼마나 꼭 쥐어야 그 어떤 일이 저를 관계하게 될 건지도 알고 있습니다.


글이 부릉부릉 써질 때는 냅다 달리며 쓰기로 합니다. 글이 끼익 거리며 멈추라 할 때도 그냥 꾹꾹 눌러써보기로 합니다. 본래의 모습과 본모습 뒤에 숨어있던 '곤궁'이 바뀌는 중입니다. 어쩌려는지.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는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고 했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리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먼 눈을 기다리며 써보기로 합니다.


글쓰기 공포(fear)가 왔다가 한 고개를 넘어 휴우 편한 숨을 넘기기도 전에 공포(blanks)의 위험을 감지합니다. 발행 클릭 고성에 내용은 텅 빈 악몽을 꾸곤 합니다. 너무 집착적인 삶의 넌더리.


다음 눈이 올 때까지 꾸준히 글을 쓰기로 합니다.


눈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