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닥거리는 무 말랭이 무침에 술 첫잔을 허락한다는 건 행복임에 틀림없다
동네 귀퉁이에 생긴 통창의 밝은 술집은 여지껏 어두운 바에서나 앉아 즐기던 혼술의 세계에서 나를 나오게 했다.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러 시집 세 권과 쇼펜하우어를 샀다. 이미 와인을 한잔 하고 꺾이고 풀죽은 날개로 집을 나선 터라서 세상에 기대는 없다.
다만, 그저 오늘은 한 잔 더 하고 싶을 뿐. 그저 오늘은 흐르는 대로 그냥 두고 싶을 뿐이었다. 내 고뇌를 마주할 사람은 나 뿐인것을 안다. 그래서 혼자서 찔끔거릴 시간과 장소가 필요한거다.
메로는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다.
메로구이는 기름지다. 내 몸을 뒤집어 기름칠을 해준다. 그 메로 기름이 한잔 알콜로 벗겨질 때의 쾌감이란 나 혼자서만 즐기는 특권이다.
메로의 뽀얀 살을 마주하면 왠지 부끄럽다. 속 시커먼 내 눈이 메로 빛에 반사되어 타락하고 꼬질해진다. 잘 살고 싶은 세상이 메로 속살처럼 나를 반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두운 내 목구멍을 향해 메로를 몰아 넣는다.
고기집에서 혼술을 하는 것을 주당의 가장 최종 단계라고 들은적이 있다. 나는 페스코라서 생선집에서 혼술을 한다. 오늘은 나 혼자 이 크고 밝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월욜이라 그런가.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 목적이 고뇌라 세상을 허덕이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난 허덕이진 않는다. 그냥 받아들이면 허덕일 필요도 없다. 행복은 항상 미래나 과거에 있다고? 그 말도 맞다.
지금 나는 멀건 술 한잔을 바라보며 공허하지만, 술이 나를 채워내려가 가만히 기다리면 예외없이 과거가 되어 행복하다. 지금 바로 나를 지나간 과거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술을 마시면 눈이 먼다.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지개로 번쩍거리는 화려함에 웃게 되고 색깔이 휘돌아 섞이는 추상화에 정신을 얹는다. 괜찮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아마도 금방 싫증이 날거라는 쇼펜하우어에 박수친다. 맞다. 그러면서 당신도 혼신으로 삶을 행복과 연결하려고 고투했다는 거, 그것도 안다.
나도 그렇다. 혼신을 다해 산다. 행복을 위해 고투한다. 고투한다. 그래서 아마도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오늘 글은 길을 잃었지만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혼술은 너무나 자유로워 나를 해방시킨다. 예술을 흘금흘금 바라보게 한다.
다 빈 술 병엔 예술이 가득하다. 그래서 난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