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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n 13. 2024

땡땡 페티시

OO Fetish

에릭 로메르의 영화 '비행사의 아내(la femme de l'aviateur)'에서 트리 페티시(tree fetish)라는 말을 들으며 빵 터졌던 기억이 너무 생생해 다시 한번 빵 터진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단어가 전혀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내린 그 찰나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희극이었다.


최근 본 한 영화에서 시종일관 이 단어가 넘치고 흐르고 차고 뚝뚝 떨어진다. 이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침 흘리며 봤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평점이 바닥으로 기어 다니는 영화다. 한국인의 정서를 새삼 학습한다.


내가 이상한가 정상인가를 떠나, 인스턴트적 세상을 살아가는 점 같은 관계들 속에서 보이는 대로 떠밀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누가 좋다면 나도 좋다 하고 누가 싫다면 나도 싫다 하고 누가 샀다면 나도 샀다 하고 누가 갔다면 나도 갔다 하고 누가 썼다면 나도 썼다 하고 누가 했다면 나도 했다 한다.


벌컥 맞닥뜨려 당황하고 눈물 빼고 호되게 낯설어 나락으로 곤두박 했다가 근근이 시 현실로 기어 나와 적응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도 같이 살 수 있다. 그런 사람들도 함께 할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한다, 아니 존중해라 광고가 난무하는 건 세상이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냉장고 소리가 너무 조용해서 새벽잠을 곤히 잤다는 광고는 세상 냉장고의 굉음을 인정하라는 거다.


표백제로 하얗게 셔츠 얼룩을 모조리 빼준다는 광고도 하얗게 감춰진 얼룩에 하얀듯이 살라는 거다.


눈 내리깔고 아닌 척하지만 실제는 OO페티시로 살아가면서 혹시 추상적인 가치를 우러르며 산다고 위선을 떨어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즉각적인 눈앞의 대상을 쫓는다는 의미라면 지금 현재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아닌가. 머니 페티시, 명품 페티시, 자동차 페티시, 호캉스 페티시, 빌딩 페티시... 비정상의 욕망이 넘치는 페티시 세상이다.


페티시(Fetish)는 라틴어의 facticius(만들어진 물건), 프랑스어의 fétiche로 이어 내려와 영어가 된 말이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Das Kapital)'에서는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라는 말로 등장하기도 한다. 지금이 바로 물신주의에 젖은 시대가 아닌가.


영화를 보며 울고 웃으며 기쁨을 주는 것에 대한 애칭으로 가볍다가 무겁다가 처절하기도 하다. 말 자체가 주는 경계 수위에 눈치 보며 정치 사회적으로 거슬리지 않게 낮게 조용히 꾸준히 개인적으로 간직하며 기쁘게 살면 될 일이다.


영화에서 맞닥뜨린 단어 하나에 백만 가지 생각을 하며 기쁘게 산다. 나는 땡땡 페티시(OO fetish)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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