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대기 중
삼백 마흔아홉 번째 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가 되어…….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서 있습니다. 왜관북부버스정류장에서 맞는 매일의 아침에 약간의 기대를 걸어봅니다. 버스를 타면 20분쯤 소요되는데, 어지간히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눈을 붙이지 않으려 애를 쓰곤 합니다. 그것도 몇 번만 반복되어도 습관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단 한 번의 잠으로도 습관이 되기 쉽습니다. 일단 잠도 거의 다 깬 데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글을 쓰는 것도 꽤 해볼 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루를 시작하는 데 있어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 봤자 일상이라는 게 뭐 별 것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움직입니다. 같은 지하철을 타고 거의 같은 시간에 기차에 또 오릅니다. 기차역에 내려서 어제와 같은 시간에 버스정류장에서 서성입니다. 그제야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가 이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걸 두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다고 하지요. 다람쥐는 아니지만, 가끔은 시시포스가 된 듯한 기분에 젖어 하루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힘을 뺐다가는 바위가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습니다. 언덕 정상을 향하면서 온 신경과 근육에 힘을 주었다 뺐다를 반복한 뒤에 드디어 꼭대기 가까이까지 바위를 밀어 올립니다. 열과 성을 다했으니 땀도 물씬 흘렀을 겁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잠시 닦고 있으려니 어느새 바위는 다시 언덕 아래로 굴려 내려가 버립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려고 이미 움직인 바위를 어떻게 해볼 도리는 없습니다. 잠깐 실의에 빠져 있다가 다시 몸을 추스릅니다.
터덜터덜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맨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진 바위가 눈에 점점 크게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합니다. 어떻게 밀어 올리면 다시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며 고민에 휩싸입니다. 아무리 그래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건 알지 못합니다. 죽음의 신을 속인 죄로 영원히 반복되는 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어리석고 간사한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는 끝을 맺겠지 하는 마음뿐입니다. 종아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잠시 버티었다가 뒷다리를 축으로 의지한 채 바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그의 철학 에세이인 『시지프 신화』에서, 형벌을 내린 신에게 시시포스가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형벌을 즐기는 것뿐이라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아닙니다만,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 혹시 그걸 신이 우리에게 내린 일종의 형벌쯤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상을 즐기는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일상은 언제든 굴러내려갈 수 있는 저 무지막지한 바윗덩어리와 같습니다. 매번 아침이면 리셋, 다시 말해서 제자리에 돌아와 있습니다.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곳까지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려야 합니다. 어차피 밀어 올려 봤자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있으리란 걸 모르지 않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라는 시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니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간혹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며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합니다. 더러는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 깔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마저 감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저는, 방금 전 저 아래까지 굴러 떨어진 큰 바위를 밀어 올리려 뒷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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