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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n 20. 2024

경건한 찰나 /ɡjəŋɡɜnɑntʃalɑ/

16주차 - 자신을 대하는 태도

떨리는 아침이 왔다. 이런 날은 기어코 온다. 모든 것이 방금 마지막으로 떠나고 뿌옇게 김서린 거울 속에서 더 뿌예지는 내 모습을 기억했다. 지금 아니면 이런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었던 자동차를 건저 내어 화라락 타버린 증거들에 온갖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너무 거칠게 다루어 나의 열망을 심하게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자유가 없던 열흘간은 지금 다시 온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힌트를 주었다.


클래식을 듣다가 클럽 롹으로 머릿속을 정리했다. 오늘도 경건하게 나 자신을 사랑해야지. 


눈이 마주치기 5분 전, 가장 떨리고 두렵다. 학생들과 마주하는 단 일초가 내 심장을 멎게 할 수 있다는 걸 오래 쌓인 시간이 슬쩍 알려준다. 오늘 잘해야지. 


틀린 것들이 켜켜이 초록으로 표시된 맨 첫 페이지를 본다. 이렇게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해주려면 어떤 눈빛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 검지 손가락으로 어느 줄을 짚어가며 그에 맞는 소리를 내야 할까. 학생들이 오기 전부터 나는 수많은 떨림을 견뎌내야 했다.


결국 끝나는 시간까지 충실한 사람이 자신을 가장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학생들의 논의 답안을 읽으며 내가 보지 못했던 경이로움에, 대체 나의 이 모자람을 채울 수나 있을까 반성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추가 점수를 주었던 답안의 주인공들이 충실히 그들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그래 그렇지.


언어, 우리가 해요! -- 20240619


예쁘고 신기한 소설책, '꿈꾸는 낭송 공작소(이숲오, 2023)'에 새겨 넣어 전했다. 미진하게 마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이제 책 읽으며 나누기로 해요. 부교재와 통하는 철학을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학생들은 수줍어했고 기뻐했고 마무리했다. 나도 그랬다.


삶을 천천히 함께 걸으며 샐러드를 먹고 영화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고 감동으로 눈물 흘려도 가만히 지켜봐 주는 사람을 여전히 그리워하며 찰나의 기쁜 시간들을 상상한다. 그런 상상을 채울 여유가 온다. 오, 방학.


지글지글 36도까지 들끓었던 하루였다. 몸과 마음이 녹아 흘러내릴 뻔 한 날, 과거에 살던 우매함보다 현재, 바로 지금을 기쁘게 잘 살아냈다. 


앞으로도 내 시간과 공간을 제대로 대하기로 마음먹는다.



▣ 2024년 6월 28일 ~ 7월 3일: 성적 공지와 Q&A

▣ 2024년 7월 4일: 봄학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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