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내 존재가 미안한 날이 있다. 말 한마디 따갑게 쏘았다가 뒤늦게 머쓱해져서는 돌아보며 눈 맞추려 해도 괜찮다 괜찮다 언웃음이 날아든다. 더덕더덕 먼지 뭉탱이가 나를 타고 오른다.
연달아 내 위장에게 못할 짓을 하는 날이 있다. 연타 알코올로 쓰라린 세상을 쏟아붓고는 아무리 다독이려 해도 울렁울렁 뒤집뒤집, 그럼에도 넘어가줘야 하는 유혹에 안 취한 척 포커페이스 가식 덩어리를 끓인다.
게으른 내 근육을 오랫동안 방치했다. 파워프레스 90킬로에도 닿지 않는 옆구리, 나는 수년간 그게 그건 줄 알고 죽을 만큼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꺾었다 벌렸다 했다. 트레이너의 기가 찬 표정을 오늘 또 봤다.
두려운 글쓰기다. 혼지 소스라치는 시간이 많다. 나를 쓰는 건지 너를 쓰는 건지 내가 왜 너를 써야 하는지 왜 너는 나를 쓰지 않는지 무수한 소재들이 눈물 줄기를 타고 오르며 나를 원망한다. 오늘은 너를 쓸까.
그렇게 미래가 내일로 오고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 눈앞에서 찰나가 되어 과거로 사라진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은 현재라는데 어디 있는 건가. 지금 한 자씩 타이핑되어 나가는 저 글자마저도 바로 과거로 넘어간다.
앙금으로 떨어지는 먼지를 휘적휘적 털러 나갔다. 몸이라도 혹사시켜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는 음모를 세운다.
실리콘 운동장을 숨이 넘어갈 만큼 뛰어 돌았다.
존재가 미안해서
위장을 뒤집어서
근육을 방치해서
글쓰기 두려워서
그리워해야 해서
시간마다 앓고 나니 쌓인 먼지 뭉치들...
달리다 걷다가 돌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