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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12. 2024

남벽 가는 길 4

[단편소설] 5-4

한 여름에 몽롱하고 불확실한 당황으로 스쳐 만나 이제는 쌀쌀한 겨울의 입구에서 오래 산 부부처럼 우리는 지하철 승강장 7-3 구역을 접수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앉을 만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헐렁하게 나란히 앉는다. 한 방향을 본다.


그가 그 구역에 거의 매일 출근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시간에, 나는 그의 뒷모습에 나의 미련을 매달아 두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놀라 당황한 눈으로 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게 사흘 전이었다. 


복잡하고도 신기한 겹겹의 바람들이 우연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나였으면 했고 나도 그 이기를 바랐다.


그날의 글을 마무리하면 그를 향해 앉아있을 수 있다. 바라볼 수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그는 꼬은 다리를 조용히 흔들면서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재즈인 것도 같고 오래된 가요인 것도 같았다.


Has my destiny been automatically set? I can sense the direction when I step into another world, separate from my own. My shattered soul has gradually found comfort and healing. He was there, though he probably didn’t realize how dependent I was on him.


나의 운명은 자동적으로 정해져 버린 걸까? 내 세상과는 괴리된 다른 세상으로 들어왔을 때 난 향하는 그곳을 알 수 있어. 나의 부서진 영혼은 점점 위안과 치유를 구하려고 하지. 그는 거기에 있었던 거야, 아마 그는 내가 그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오늘 내게 온 주제는 Lovers, 연인들이었다. 하나가 되고 싶지만 가능하지 않음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아무리 의지하려 해도 부질없는 허무함만 키울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니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쌓아 왔는지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지금 서로 바라보자는 말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우리 인생이 똑같이 하나로 겹칠 수는 없었다. 생긴 것도 다르지만 생겨진 형상 속의 마음도 다르리라. 기운도 다를 것이다. 


서로 원하는 것들 또한 미세한 예민함 때문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모든 불안한 떨림들을 스스로 잠재우고 같이 하는 그 찰나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찌걱거리며 흘러내리는 이기적인 욕망은 순전히 혼자서 해결해야 할 몫인 것이다. 내가 바라볼 때 그가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는 다른 세상이 질투 나도, 그가 눈 감고 있는 순간 내가 다가가지 못하는 그의 닫힌 세상을 갈증 내는 그 부질없는 슬픔도 속으로 꾹꾹 눌러 묻어 두어야 할 것이었다. 


It doesn’t matter now because my destiny has chosen its path. Even though he is part of that path, I know that reality will create a clear separation between us. I can see it from a distance and sense it with certainty. You are there, and I am here, existing in our own separate spaces and times.


이제는 상관없어, 왜냐면 나의 운명은 그 길을 선택해 버렸거든. 그가 그 길의 부분이라 해도 난 알아, 현실은 우리 사이를 아주 명확하게 갈라놓을 거라는 걸 말이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느끼지, 아주 확실하게. 당신은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는 거야, 우리 각자의 공간과 시간에 존재하면서 말이지.


내가 배운 것들과 내게 배인 저급한 무의식의 습관들이 일치하지 않을 때의 그 당황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나인 것이다. 이미 나는 그를 향해 건너가고 있었다. 까마득할 뿐인 외줄 아래를 바라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음이 커지면 부질없음도 커지니 속된 욕심이 부르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가까이 계속 가다가는 하나가 되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그건 결국 상처로 남는 거다. 


You don’t belong here.

네가 있을 곳이 아냐.


이제는 악몽이라고 부르기도 너무 잦게 내 꿈속을 울리는 친근한 목소리, 여자인 것도 같고 남자인 듯도 한 그 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더 친절해진 것처럼 들렸다. 


네 길을 찾은 건가? 마음을 이상하게 울렁이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울소리처럼 여러 개의 소리가 서로 처절하게 싸우는 듯한 복잡한 소리였다. 영혼을 끌어다 마주 앉히는 듯한 서늘함에 움찔했다. 누군가 서 있었다. 소매 자락을 하늘로 띄우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를 살리고 싶어요.


눈을 흘기며 혀를 차는 소리가 내 귓속을 가득 채웠다. 살길을 차버리고 결국 이렇게 끝내는구나. 어리석은 것! 그래, 그게 너의 삶이지. 


네가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녀였다. 그녀의 소매자락이 내 가슴을 쓸어 올리다 내 목에 닿아 멈추었다. 눈을 뜨고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아… 차가워요. 부드러운 실크 소맷자락이 아니라 칼 날이었다. 날카롭게 반사되는 푸른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아... 엄. 마?


아… 악, 아니야, 안 돼요, 아직 아니 아니!


현실에선 집착 따위 없이 사는 듯하더니 꿈에서는 그 반대였다. 이미 건너가고 있는 생명을 다시 돌려달라 애원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땀에 젖은 몸이 시트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알았어요. 알았다니까요. 


초월의 힘이 오는 길을 엄마의 푸른 칼이 막고 있었다. 심장을 쥐어짜며 죽어가면서도 그 칼을 내 앞에 세우고 누구도 그녀의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며 핏기 없는 가슴으로 나를 꼭 안고 있었다. 


그녀를 살리는 힘을 거부하고 죽어가며, 내가 택하는 생명을 살릴 수 있노라 마지막 유언으로 눈을 감은 엄마였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어렸고 이내 그 말을 잊고 살았다. 


내 편인듯한 세상을 업고 성공했고 사람을 만났으며 다 쏟아붓고 나서야 현실이 왔다. 내가 이룬 성공과 부를 쥐고 더 큰 부를 향해 떠나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택한 생명이 아니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과 맞바꿀 한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엄마의 푸른빛이 내게 왔다.


남벽에 그를 초대한 건 나의 갈망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그 푸른빛이었을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하루씩 하루씩 시간을 접고 있었다. 


7-3 구역에서 그를 보는 건 내 남은 시간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의 기운 안에서 글을 썼다. 지켜봐 주는 그의 통증과 상처에 내 남은 빛을 불어넣었다. 


생기를 찾아가고 있는 그의 마음이 그의 몸에 강건한 생명을 쌓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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