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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16. 2024

중력

끌어당김

비정상적으로 허리가 가늘어져 한 줌에 쥘 수 있다면 무중력으로 나의 내장이 내 부피의 어느 위쪽에 붙어 있다는 거다. 피가 머리로 쏠려 얼굴이 뚱뚱해지고 키도 커진다는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는 무중력 호러다. 지구가 나를 버렸다는 거다. 구를 품은 구가 나를 버, 슬픈 공포 영화다.


우리는 중력 때문에 바닥이 있는 곳이라면 붙어 있고 설 수 있고 뛸 수 있다. 바닥과 바닥이 마주쳐야 제대로 사는 것이다. 손바닥과 발바닥은 그래서 바닥이라는 매우 안전한 최소 의미 덩어리를 가지는 걸지도 모른다. 


나의 바닥은 견고한가. 다른 바닥과 마주쳐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가. 탄식으로 시작하는 하루다. 끌어당기는 대로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다. 나의 바닥과 너의 바닥이 진심으로 닿아야 뜨거운 것이다. 


책이 중력이 된다, 아침이면 펼쳐 둔 페이지의 한 구절을 필사하고 낭독하며 생각한다.


꿈이 중력이 된다, 하나씩 이뤄가는 소중한 것들에 눈도장 찍으며 큰 꿈의 퍼즐을 완성할 생각에 매일 행복하다.


사람이 중력이 된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명한 편지를 쓴다, 오늘도 기쁜 날 되세요, 가장 멋진 날 될 거예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나에게 그녀에게 그에게, 그녀에게 나에게 그에게, 그녀에게 그에게 나에게, 이어지는 사람들은 나의 중력이다.  


가리고 두려운데, 도전하며 상처받는데, 쓴웃음이 가득한 눈물이 절절해도 여전히 마음에 몸에 남아있는 그들은 나의 중력이다.


가장 안쪽의 핵으로부터 끌어당기는 힘을 잘 알아채고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머물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마주치며 만들어진  그 사람중력이다.


과거에서 이어진 현재의 길에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걸어 들어오기도 한다. 정중히 사절하는 마음도, 가슴 가득 안겠다는 마음도 그 중력의 힘의 세기와 색깔만큼 가능하다. 


든든하고 따뜻한 초록

애처로워 다독이는 베이지

가슴깊이 온기를 주는 오렌지

타버릴 듯 뜨거운 열정의 레드

쿨하게 같이 있고픈 스카이 블루

빛이 가득 은은한 등대 같은 노랑

... 이런 진심의 색깔들이 나의 중력이다.


하지만, 진심이 아닌 것들을 알아보는 눈도 가지고 싶다. 그들을 이내 알아채면 무중력 행성으로 보내 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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