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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10. 2023

아빠, 저 잘못한 거예요?

연명한다는 것의 의미

텍스트에만 박혀있는 호칭, '아버지, ' 나는 아버지가 살아 계셨던 동안,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은 없다. 명랑 쾌활 장난끼의 '아뽜~아~!' 독하게 반항할 때도 '아빠!!!' 보통은 그랬다.


이제 글에만 남은 '아버지, ' 지금 내게 '아빠'는 없다. 명랑 쾌활 따윈 더더욱! 아버지의 세 번째 기일을 며칠 앞두고 엄마와 아빠를 합장하여 보내드린 그 바다에 동생과 다녀왔다.


두 분 잘 계신가요?




낯선 H대학 병원 응급실에 장착되어 병원의 목적에 최대한 부응하시느라 온갖 생명유지장치에 대롱거리시던 모습은 마치 공상 과학 영화의 인간 복제 장면 같았다. 생명을 넣고 있는 건 맞는 거야?


멀치감치에서 보이는 건 복잡하게 얽힌 튜브들과 기계, 희끗거리는 아버지의 머리카락뿐이었다.


중환자실은 두 종류였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리고 살아날 수도 있는.


"왜 이렇게 보라색이신 거죠?"


"산소가 부족해서요."


건조한 의사의 대답에, '가능성이 거의 없는' 중환자실로 침대에 실린 아버지가 들어가는 것을 멀뚱히 보고 서있었다. 서류 작성을 해야 한다며 기다리라 했다.


기본 인적 사항을 적고, 간호사가 물었다.


"생전에 아버님께서 생명유지장치에 대해 남기신 말씀이 있으셨던가요?"


"아뇨, 없었어요."


"생명유지장치를 계속하실 건가요?"


"하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잠에 취해 병원에서 받은 전화에, '네네, 그러세요.' 한 것이 뿌옇게 기억이 났다. 저 기계들을 아버지에게 입힌다는 전화였던가? 정말 장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지 두세 번을 더 물었지만 나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빨리 밀어내려는 고약한 딸이 되었다.


아버지가 정말 원하지 않으셨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의존적이지 않고 씩씩하게 사셨으니 기계에 의존해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으실 거라는 나의 추측일 뿐이었다.


서류 서명 후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다급하게 나와 내 이름을 부르는 의사의 입에서 갑자기 심정지가 다시 와서 가슴 압박술을 하던 중 심장을 제외한 장기들이 파열되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심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럼 다시 깨어나실 수 있는지 물으니 없다고 했다. 깨어날 수도 없는데 심폐소생술이 무슨 소용인가요? 돌아가시지 않도록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간단히 호흡장치만 한 아버지는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며 살아있는 중이라고 신호를 보내고 계셨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병원으로 향하던 새벽, 다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신장이 매우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데, 신장 투석을 하시겠습니까?"


"신장 투석을 하시면 지금보다 나아지시나요?"


"아니요, 돌아가시지 않게 생명을 유지하는 겁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마치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패륜아가 된 것 같았다. 재차 정말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눈물과 분노가 함께 솟았다. '투석을 안 하면 곧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한번 더 묻는 질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질문이 너무 잔인해서 거기에 딱 맞는 '네, '또는 '괜찮다'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천하에 몹쓸 딸이 된 건가. 온 전체가 보라색인 아버지 손을 잡고 죄책감에 하염없이 울었다.


의사가 사망 시간을 또렷이 선언한 후에도 아버지의 가슴은 오르내리고 있었다. 직원들이 침대를 끌어가려고 할 때 나는 온 힘을 다해 침대를 움켜 잡았다.


"아직 숨을 쉬시는데요..."


"기계에 의존한 호흡입니다."


기계 호흡이라고요? 그래서 다른 가족들이 더 올 거냐고 물어봤던 건가? 두세 시간은 더 살아계시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은 이 기계 호흡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 저 이상한 호흡기를 떼면 TV에서 보던 것처럼, 평행으로 나는 삐~소리를 들으며 정말 돌아가셨구나 인정하게 되는 건가?


멍하게 기. 계. 호. 흡. 이란 단어를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직원들은 침대를 가로채듯 끌고 갔다. 병원에서 결정하는 사망 시간이라니 아버지 삶이 끝내 존중되지 못한 채 허망하게 마무리 지어진 것 같았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나고 나중에 깨닫게 된 건, 나는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신 정확한 시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남편은 온라인을 뒤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양식을 톡으로 보내왔다. 우리 아이에게, 부모의 마지막에 트라우마까지 더해주고 싶지 않다는 그의 의지였다. 여전히 나는 죄책감 중이다.



#라라크루5기 (Extra 3/5) #라라라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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