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ving Tree,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The Taking Boy, 가차 없이 가져가는 소년 이야기는 지지 않는 공명으로 항상 살아있다.
그 이야기 틈으로 나의 어린 상상을 넣어가며 이러면 더 행복하겠어 그러면 더 슬프겠다 하면서 이따금씩 읽으며 만지작 거려 이제는 지저분한 손 때로 덮인 작은 책이 있다.
쉘 실버스테인(Shel Silverstein)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The Giving Tree(1964)'다. 지금도 여전히 연두색 표지만 보아도 잔잔한 찡함이 가득하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어.
그의 시, '똑똑하니까, Smart(1974)'는 아빠가 주신 1달러(1,000원) 지폐 1장을 2개의 쿼터(500원), 3개의 다임(300원), 4개의 니클(200원), 5개의 페니(50원)로 바꾼 꼬마가, 동전의 개수가 더 많아졌으니 아빠가 자랑스러워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다.
꼬마 말고 꼬마와 동전을 바꾼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는 이야기다. 바꾸자 했다고 그냥 바꿔 준 루나 베이트 할아버지, 사료 가게 주인은 세상에서 종종 만나는 여러 성격의 사람들로 상상할 수 있다. 그 바꾸는 사이에 자신이 예상하는 대화를 끼워 넣으면 그 대화의 내용으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졌는지도 알 수 있다.
아이들과도 어른들과도 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 이야기를 확장시키며 해피엔딩으로도 그 반대로도 끝낼 수 있다.
세상을 울리는 이야기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가슴을 울리게 만들든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거나 분노나 슬픔으로 눈물을 쏟게 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퍼즐로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쓸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가슴에 손을 얹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세상을 울리는 법은 여러 가지다.
울림의 림은 나무가 나란한 수풀 림(林) 일지도 모르겠다. 숲에는 여러 다양한 나무가 그들 나름대로 적응하며 자란다.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때가 되었다 사그라들기도 한다.
띄엄띄엄 해를 보는 초록 이파리도 좋겠다. 한 발 물러날 때를 아는 건 현명한 것이다.
내게 울림통인 이 매거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새삼.
펭귄 그림 from 영화, '한국이 싫어서' 엔딩 크레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