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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Sep 05. 2024

죽음에 고여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2023, 레이첼 램버트 감독

[no 스포일러는 없다]


영어 제목이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 분류는 로맨스 코미디, 91분간의 총체적 분위기는 현실의 차가움과 죽음에 대한 파스텔톤의 따뜻한 다독임으로 각인되었다.


왜 Death가 아닌 Dying을 생각하는 걸까. 사실은 죽음은 잘라진 두부처럼 사면이 매끄럽고 각진 모양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과정이자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가까이 가고자 하는 죽음을 맛만 보는 하루하루는 죽음에 화장을 하고 염을 하여 자신으로부터 멀리 보내려는 고약한 갈증이 아닐까.


매일매일 살아있지 않음에 다녀오는 하루는 그 길목을 유람선이 이어주고 커다란 크레인이 목 매어 준다. 죽음의 숲 속에 아름답게 누워 창백하고 차가운 얼굴과 손을 가로질러 바쁜 검은 벌레는 아직 남은 온기에 불안하게 스멀거린다.


일상의 익숙함을 그대로 즐기고 잘 해내는 그녀는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존재에 불을 켜기 위해 죽음을 전시하는 것이다. 숲에 누운 채로, 바닷가 떠내려온 거친 나뭇가지에 걸려 누운 채로 포즈도 아름답게.


로맨스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가장 코미디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다'는 영어 제목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한국어 제목이다. 한국은 뭐라도 구겨 넣어 웃는 근육을 만들고 싶어 한다. 가식이다.


누구라도 한번쯤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의문이 생길 때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색하고 낯선 이물감과 권태, 고독 속에 치를 떨며 오히려 존재의 갈망은 죽음을 바라보게 한다.


죽지도 못할 거면서, 요란하게 외롭기만 할 거면서.


인간으로 태어나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며 꿈을 꾸다가 무너지는지. 왜 지금을 살지 못하고 닿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는가. 삶도 죽음도 지금이 아니면 감촉할 수 없다.


삶도 지금 뚜벅뚜벅

죽음도 또한 호하게

예쁘게 폼나게 죽으려다

결국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주름이 깊게 패인 그녀의 말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와 그저 엉겨 붙어있다.


'It's hard... Being a human.'



포스터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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