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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Sep 29. 2024

줌을 위한 줌

아날로그를 위한 디지털

그곳에 들어가면 몸이 납작해진다. 표정도 평평해지고 웃음도 부조로 벽에 걸린다. 입술을 달싹인 날숨과 들숨의 조합이 벽에 부딪혀 귓속에 다다르면 그제야 드럼을 두드리며 먼지를 털고 달팽이관을 돌아 새로운 의미로 마음을 노크한다.


그런 납작함의 부자연에서 의미를 캐내며 하루의 퍼즐을 맞춘다. 줌zoom에 들어가 줌zoom 사람으로 살다가 줌zoom에서 나와 다시 줌giving사람으로 수렴한다. 들은 것들을 가슴에 새기고 받은 것들을 노트에 담아 다시 세상에 돌려줄 것들을 하나씩 다듬는다.


받은 것의 두려움은 주고나야 사라진다. 마주한 웃음의 빛은 반사해야 빚이 되지 않는다. 한 줌씩 받아 한아름 돌려주는 줌giving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글 모임의 줌zoom은 낭독하고 들어주고 감성과 설렘을 나누고 같이 감동할 줄 안다. 글쓰기와 글 읽기 모임이 그렇다. 줌을 뚫고 가슴에 들어온 감동으로 하루를 살고 한 달, 일 년을 버틴다. 글이 소설이어도 산문이어도 시여도 좋다.


함축된 응어리의 시를 낭독하는 시간은 특히나 더 울림이다. 내가 흥얼거리곤 하김소월의 개여울은 리듬 따라 애틋한 그리움과 갈증이 출렁인다. 김소월의 그 그리움에 대한 내 강박의 기록이 숨차다.


빛을 바라보는 줌zoom에서 마음을 나누는 줌giving으로 가는 길이 좋다.


그 공간 줌zoom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먼 곳의 귀한 분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공간을 뛰어넘 마주침이 따뜻한 허그로 실현되는 그런 줌giving의 경이로움이 계속되고 있다.


줌zoom에서 마주친 신기한 세계

줌zoom에서 만난 '그녀'들

줌zoom에서 본 '그'들

모두 줌giving을 향한 사람들

디지털로 만나 아날로그가 된 사람들


캥거루의 여운과 남겨진 메시지를 기억한다. 줌giving의 적극적인 실천을 위한 블루프린트가 아프리카 봉사로 향하고, 자신에게 줄 깊은 위안이 부족하지 않게 매일 부지런히 가슴을 채우는 시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아날로그 다독임에 나를 한번 더 돌아본다. 


나는 디지털로 사는가 아날로그로 실천하는가.


디지털로부터 미력하게 근근이 담은 내 한 줌의 온기를, 받기만 할까 봐 겁내며 마주하지 못했던 아날로그의 시간을 이제는 용기 내어 따라가기로 했다. 그 길 끝에 기어이 마주해야 할 내가 있을 것이다.


줌zoom에서 줌giving을 위해 온 귀한 생명으로 버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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