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휴가지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분 단위로 일하며 즐기기
@혜남세아 작가님의 우울증 보다 무서운 효율증을 읽으며 깊이 공감한다. 심각한 효율증과 자신감 과잉증에 나를 바치고 사는 중이다. 생리적으로 세로토닌 재흡수가 제대로 안되니 몸에 남아 헤매는 세로토닌은 중증 효율증과 쓸데없는 자신감의 연료가 된다. 무대뽀 행복 에너지가 충천할 때면 나를 어떻게 쪼개 써도 에너지가 펑펑 남을 줄로 셀프 오해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니 나의 휴가 동안에도 학습 리듬이 깨어지지 않도록 과제 습관을 만들어 주려는 줌프로젝트를 한다. 나와의 수업이 없는 동안 아이들은 개학을 할 것이고 학교와 친구와 적응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규칙적인 과제 시간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가! 처음 계획은 뿌듯함이었다.
오전 2시간 모닝줌에 들어와 최소 1시간 동안, 또는 저녁 2시간 이브닝줌에 들어와 최소 1시간 동안, 뭐가 어렵겠어, 잘 성공시켜서 자기 불빛을, 스스로의 가능성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내가 이걸 해냈구나. 해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할만한걸? 계속 가야겠다. 이게 바라는 결과였다.
모닝줌에 신청한 나의 예쁜 아이들은 오전 6시부터 사뿐사뿐 줌에 들어와 영어책을 크게 낭독하고 필기체 필사를 하고 문해력 분석을 하며 각각의 과제를 한다. 이브닝줌 아이들도 저녁 8시부터 입장하여 과제를 하고 완료한 과제만큼 좋아하는 색깔로 구글 드라이브 숙제 박스를 채우고 있다.
이 모든 게 나의 여름휴가 여행 이전까지는 한치 오차 없이 착착 돌아갔다. 나의 교습소 아이들은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아, 너무 좋잖아!
휴가지 도착. 저녁 8시에 저렇게 다리에 걸린 불빛이 찬란할 줄 몰랐다. 그 8시에, 서둘러 줌을 켜며 일을 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의 '돌았구만!' 눈빛과 딸아이의 '그게 엄마니깐!' 시선에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선생님, 휴가 때는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는데도 '쌤은 그게 쉬는 거야, 도전! 도전!' 그랬다. 그게 쉬는 거라고? 오, 노! 뻥! 치시네~!!! 그건 분명 '일(work)'이었다.
'할 때 힘들면, 일'이라고 어디서 읽었더라? 2년 만에 내게 온 여름휴가에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휴가 동안 읽을 책을 쌓아두고 시간을 제대로 찾지 못하니 마음이 너무 힘들다. 중2 녀석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어야 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중심에 두고 자, 이제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바꿔볼 거다! 점선처럼 끊기는 와이파이를, 헐레벌떡 뛰어나가 사온 랜선으로 연결하니 이 큰 안정감, 하나 해결이다. 분 단위로 쪼개 쓰는 휴가, 한번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은가!
▶ 4시30분 기상 ▶ 4시40분 커피 ▶ 4시50분 조깅 ▶ 5시30분 샤워 ▶ 5시45분 줌셋팅
▶ 6시~8시 줌 소회의실 방문+왼손필사+인스타&톡 업로드
▶ 8시15분 아침식사 ▶ 9시30분 책 읽기 시작 ▶ 17시30분 저녁식사 ▶ 19시45분 줌셋팅
▶ 20시~22시 줌 소회의실 방문+전자기기 충전(스맛폰 꼭!)
▶ 22시30분 하루 평가+기록 ▶ 23시 취침
일주일 휴가 동안 Frindle과 The Moon and Sixpence를 꼭 읽고 싶다. 준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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