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Aug 29. 2023

공룡과 기린

만남의 재정의

만질 수 없어도 함께 산다. 눈 맞추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부산 항에 우뚝한 스테고사우르스와 기린처럼.




지난 토요일에 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10년 동안 비혼주의였던 한 커플이 어떻게 사회적 결속을 선택했을까 나 혼자서만 궁금한 듯했다. 먼지를 섞는 박수와 폭염보다 뜨거운 웃음 낯설었다. 모두 축하했다. 나도 축하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자니 초현실 비현실 같아 현기증이 났다.




내가 설 곳은 어디인가. 존재하는 여기일 뿐,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란 없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밀려다니는 곳마다 힘의 회오리가 불지만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바람을 타면 별 탈 없이 지나간다.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와 몸에 닿았던 회오리 흔적마저 탈탈 털어 정리하고, 되고 싶은 나로 돌려놓는다. 다시 나를 시작하는 스위치를 경쾌하게 누른다.


사람에 덜 익숙하게 살아도 되는 시대는 분명한데, 혼자가 편한 건 확실한데, 옳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 갑작스러운 발작을 경험한다. 그리운데 그립지 않아. 살며 겪어 온 긍정 부정의 뒤죽박죽 속에서 보석 같은 순간들이 큰 의미이기 때문일까. 그래, 그 순간들이 내가 되고 글이 되는 거니까.


같이 글을 쓰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깨달은 만큼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무모함은 누구에게 보다 지지 않아 덜컥 발을 들이고는 하나씩 이뤄내고 있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그 '만큼'을 수식하는 정도를 살살 늘려가는 것이 더 깊게 사는 방법이다.


관심을 보였다가 집착스러움에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흘끗흘끗 시작해 보는 시선이 스스로도 귀엽다고 느낀다. 온라인에서도 처절히 질척거릴 수 있다. 그러다가 지금 멈추고 서있는 중이다.


시간과 거리의 차이가 있어야 만남이 진지하게 제대로 정의된다. 만남이 서로 물리적으로 닿아야 하는 건 아니다. 만나보지도 않고 만난 척하는 것은 더더욱 만남이 아니다. 내가 존재하는 바로 그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런 만남들에 감사하는 요즘이다.


그러니 부산항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공룡과 기린처럼, 그냥 계속 쭈욱 영원히 비혼으로 사회적 제약에 거리를 두고 살아도, 꼬집어 아픔을 느낄 만큼 가까운 물리적 몸의 거리가 아니어도, 우리들의 만남은 항상 뜨거울 수 있다.


만남의 재정의다. 비대면에서 모방하는 사회성이 체화되어 익숙해지면서, 실체에서 멀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그 중심에 서 있게 되는 몰입의 상태, 그것이 만남이다.


나는 오늘 사회적으로 말을 걸었으며, 같이 느꼈으며, 아침을 열어주는 의인을 기다렸으며, 올라오는 글과 감성에 하트를 꾹꾹 붙였으니, 그게 만남이 아니면 무언가. 그 만남이 행복이 아니면 무언가.



#라라크루5기 (2-4) #라라라라이팅 만남은 몰입이 주는 행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쁜 출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