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큐가 준비되었다는 미주의 톡을 받고 준하와 희서는 숲길을 따라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려왔다. 준하와 희서의 잡은 손은 여전했다. 간간이 어깨를 감싸주는 준하를 희서는 뿌리치지 않았다. 흔들리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안아주는 것 같아 편안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미주가 손을 잡은 준하와 희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희서가 손을 빼려고 하자 준하가 더 힘주어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동후의 미소도 평화로운 것 같았다.
숲 속의 글램핑은 여유 있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계획이었다. 와인을 한 잔씩 들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과 여행이나 취미,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며 모두들 한껏 들떠 있었다.
모두들 그리 거창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철학으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미주와 신의 소명을 따라 살겠다는 동후, 자기 만의 색깔을 지닌 의상 디자이너가 되려는 준하, 그리고 연구자의 길을 위해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희서, 이제 막 사회에 적응해 가며 현대인의 바쁜 삶을 즐기는 중이었다. 미주는 한국에서 넷이 모일 수 있는 시간들에 항상 흥분하며 신나했다.
“난 사람을 만나서 뭔가 같이 하는 건 못할 것 같아. 혼자의 자유를 포기하자마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것만 같거든. 누군가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고 부담스럽고… 느리고…”
“느리다고?”
비혼주의자인 미주의 말을 끊으며 희서가 대꾸했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걸 같이 해야 하니까. 적어도 옆에 있는 사람을 존중해야 하잖아. 물어봐야 하고 들어봐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뭐 그런 시간들이 나는 왠지 낭비 같아서 말이야.”
"너도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그런 생각 안 하게 될걸?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정말 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거든. "
희서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대학 시절 껄렁거리며 남자아이들을 무시하던 생각이 나서 혼자 풉 웃어버렸다. 미주가 바로 눈치챘는지 한 마디 더 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말 거는 남자애들에게 벌처럼 쏘아댔구나! 준하는 이제 자연스러운가 보네? 네게 어떤 큰 변화를 주려나? 어쨌든 둘이 좋아 보이네. 축하해!"
동후는 계속 준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슬프게 지나가는 눈빛을 희서는 눈치채고 있었다.
곧 동후는 사제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에 들어간다고 했다. 신입생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외출이 금지된다면서 한동안 만나지 못할 거라 했다. 그런데 그런 계획들을 말하는 동후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쓸쓸해 보여서 등이라도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마치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땐 스쳐가는 희서의 불안감이 뭔지 잘 몰랐다. 동후가 한껏 행복해하는 순간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미래를 결정했다면서도 못내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희서는 한국에 자리 잡고도 너무 바쁘게 보내다 놓쳐버린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마침 토요일이 희서의 생일이기도 해서 같이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미국에서 희서가 유일하게 배워 온 스테이크 요리를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미주가 치즈를 준비하겠다 했고, 동후는 과일을, 그리고 준하가 와인을 사 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