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의 달걀 도매상
부모님께서는 마산에서 달걀 도매상을 하시던 외할아버지를 돕는 일을 하신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가끔 저와 산책을 하실 때나 읽던 책을 내려놓으시고 제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순간을 얘기하시곤 했어요.
아기는 새벽에 혼자 일어나 울지도 않고 가만 앉아 있다가 스르륵 여닫이 방문을 열고 나갑니다. 서늘한 마루 한편에 쌓아둔 달걀 중 하나를, 한 손에는 다 쥐어지지도 않아 앞 춤에 끌어안고 아장아장 방으로 들어옵니다. 엄마 옆에 앉아, 들고 들어온 달걀을 엄마 목에 굴리며 엄마를 깨웁니다. 엄마는 달걀을 받아 머리맡에 놓고 아기를 꼭 안아줍니다. 엄마가 데워온 미음에 아기는 팔을 흔들며 좋아하면서, 마치 강아지처럼 가라랑 가라랑 소리를 내며 미음을 받아먹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새벽 그 시간에 일어나 달걀을 가지러 가는 제가 무척 신기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학교 도서관 청소를 자원했어요. 열쇠를 받아 든 봉사 전날 가슴 두근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 6시쯤 학교에 가면 아무도 없었어요. 도서관을 열고 들어가 청소를 하면서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을 흘긋거리며 그저 신났었지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혼자 읽는 기쁨이 컸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일찍 등교해서 학교 안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걸어 다니곤 했어요. 산 밑에 자리한 학교의 새벽 공기를 다 마실 작정이었는지 거의 매일 새벽에 들어가 학교 옆 작은 오솔길을 걸었었어요.
그렇게 새벽을 사는 게 참 좋았습니다.
가장 최근 새벽 이벤트는 강퇴당한 영어학원 카페에서 맥벙이라는 '맥도널드 아침 벙개'를 했었던 거예요. 누가 오려나 하고 무모하게 시작했지만 새벽을 즐기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아침 7시에 맥도널드에서 만나려고 한 두 시간을 운전하는 시간도 행복했어요. 운전하는 길에 여명이 오면 그 벅참을 가슴에 담고 달리곤 했거든요. 24시간 맥도널드, 맥카페 에스프레소가 맛납니다.
지금도 새벽은 저를 맞아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하루를 바라다보며 그날 할 수 있는 가장 뜨거운 것을 선택하여 살 수 있도록 저를 지지해 주는 새벽, 이렇게 차분히 글을 쓸 수 있는 새벽이 있어 감사합니다.
제 앞에 펼쳐진 새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오늘도 시작합니다. 어제보다 더 뜨거운 오늘을 보내고 싶어요.
새벽길 저 끝에 제가 살아내야 할 삶이 버티고 있습니다. 때론 초록불을 지나며, 때론 빨간 신호등을 만나겠지요. 그래도 새벽이 있어 저를 시작합니다. 새벽 달걀을 손에 쥔 그때부터 새벽은 저를 살려주고 있습니다.
문득! 배고파 엄마를 깨운 아가가 철저한 생계형 새벽을 산거 아냐? 오늘도 저를 비켜가지 않는 이상한 의식의 흐름으로 잘 살아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