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성과 독창성
오래전 저작권 문제로 이메일 전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학생이었고 그는 영국 한 대학의 교수로 기억한다. 언어를 가르치니 전 세계 넷트워킹으로 경험을 공유하며 배우는 공동 메신저에서 내가 꼭 기억해야 할 그의 메시지가 있어서 나의 블로그에 복사해 붙여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올린 글 끝머리에 그의 이름도 밝혀두었는데, 그는 주관적 메시지이고 자신의 창작물인데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으므로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첫 이메일에서 나를 무식하고 몰염치한 사람으로 몰았다.
나는 배우며 가르치는 학생이며 너의 메시지에서 큰 통찰을 얻어 꼭 기억해 두고자 블로그에 올렸으나, 세상에 공개되는 온라인에 너의 허락을 받지 않고 올렸으니 나의 잘못이다. 이제라도 너의 글을 내리겠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꽤 공격적이었던 그의 이메일에 나는 납작 엎드렸고, 여러 번 메시지를 교환한 후 그는 블로그에 자기 글을 게시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것이 나의 첫 저작권 관련 기억이다.
최근 브런치에서 저작권 관련 글을 많이 보게 되면서 궁금증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어문저작물'의 포함과 인정 범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저작물의 정의에서 '창작성'이라는 설명의 모호함에 길을 잃었다.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합니다(「저작권법」 제2조제1호).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저작물에는 창작성이 요구됩니다. 창작성은 남의 것을 베끼지 않고 작가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높은 수준의 창작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체육관광부(https://www.mcst.go.kr)-주요 정책].
어문저작물은 소설·시·논문·강연·연설·각본 등의 저작물을 말합니다. 어문저작물은 단순히 서적, 잡지, 팜플렛 등뿐만 아니라, 문자화된 저작물과 연술 등과 같은 구술적인 저작물이 모두 어문저작물에 포함됩니다. 일반적으로 카탈로그나 계약서식 등은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지만, 표현의 방법이 독창적인 경우에는 저작물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법제처, 찾기 쉬운 생활 법령 정보(https://m.easylaw.go.kr/MOB/CsmInfoRetrieve.laf?csmSeq=695&ccfNo=1&cciNo=1&cnpClsNo=1)-저작물의 종류]
높은 수준의 창작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베끼지 않고 독자적인 사상, 감정을 표현하면 '저작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준의 높고 낮음을 결정하는 것, 되고 안되고는 누가 어디서 하는가.
자(ruler)가 필요하다. 그런 능력이 있는 자(者)를 만나고 싶다. 어떻게 높낮이를 재고 있는 걸까.
어문저작물에서 팸플릿과 카탈로그의 방향이 다르다. 팸플릿은 되고 카탈로그는 안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보면 언어의 경계에서 다시 길을 잃는다.
팸플릿(pamphlet)「명사」 설명이나 광고, 선전 따위를 위하여 얄팍하게 맨 작은 책자.
카탈로그(catalog)「명사」 선전을 목적으로 그림과 설명을 덧붙여 작은 책 모양으로 꾸민 상품의 안내서.
이처럼 언어 표현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힘들고 사람마다 이해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언어학에서도 그 경계가 모호해서 의미론이 가장 어렵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한 문장을 만들어 두고 내가 독창적으로 썼으니 그 문장을 쓰려면 내 허락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한 문장을 자기만의 소유로 하는 것이 가능해도 좋은가.
단어 몇 개 만으로도 수많은 문장이 나올 수 있다. 일반적인 인간 언어의 특성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 중 하나를 자기 것으로 고정하는 일은 있어서도 안되며, 고정해 주는 그 자(者)들도 문제이며, 고정해 달라 요구하는 것은 글 쓰는 다른 작가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기심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통문장을 책 제목으로 많이 사용한다. 그 책 자체는 '어문저작물'이 되어 그 책이 아주 높은 수준의 창작물은 아닐지라도 그 내용에 작가의 독창적인 사상이나 감정이 표현되었다면 인용을 정확히 하여 글 쓸 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책 제목인 그 문장 자체를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장은 소유가 아니라 사유를 위해 태어난다.
창작성과 독창성이 멋지고 훌륭한 말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언어를 앞에 두고 매번 막다른 길을 마주한다.
언어는 소리에서 시작해 단어로 태어나 문장이 되고 단락이 되고 글이 되고 책이 되고 사람이 된다.
단어에 욕심을 내면 문장이 사나워지고 단락은 폭풍을 일으키고 해로운 글로 나타나 그런 책을 낸 사람의 책(責)이 되는 것이다.
두렵고 답답하다.
▣ 사진 - 백남준 작품, 부분 (경기 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