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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밑에서

수렁에서 흘리는 침의 판타지

by 희수공원

1센티 곱하기 3센티의 직사각형 수백 개에 들어 있는 작은 이름들이 와글와글 시끄럽다.


부지런히 복도를 따라 걷는다.


5센티 곱하기 15센티의 네모에는 더 반듯하게 보이는 번쩍이는 금칠 명패가 소리소리 지르며 배를 내밀고 있다.


머리를 절레절레 입구를 향하면 조금씩 커지며 다다르게 되는 골목을 흘깃거리며 20센티 곱하기 60센티를 지나 50센티 곱하기 150센티쯤의 가장자리에 눈부신 큐빅이 휘황한 기다란 도형 앞에 선다.


10만 원을 낸 와글와글 후원자의 보이지 않는 까만 이름들이 운다.


100만 원을 낸 금빛 기부자의 살기 넘치는 어렴풋한 실루엣들이 넘실거린다.


1000만 원을 쏘아 준 은혜로운 이름들이 눈을 아래로 깔고 흐흐거리면 5000만 원이 업어 메치기를 하며 아래로 깐 눈을 밟아 터뜨린다.


펑! 뻥! 촵! 꽥! 풉!


최근 흥행한다는 영화를 보고 몇몇 장면이 앙금처럼 뭉쳤지만 그 연기자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 보통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 누구더라? 제대로 본 거냐. 바보냐. 나는 더듬거리며, 그 있잖아 그 사람, 남자, 와이프한테 총 맞아 죽은, 그 버건디의 얼굴로 절규하던, 누구? 이름이 지나가지만 연결하지 못한다. 아니, 그 등짝 문신이랑 섹스하던 여자 남편 말이야. 아 하. 그의 코미디를 다 잊고 심장을 뒤집으며 절망하던 모습이 그대로 쿵 떨어져 남았다. 어쩔수가없다.


영화를 제대로 못 보는 누더기로 낙인찍혀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부랭이로 불려도 체에 걸러진 시간의 한 방울 부피로 한동안 사는 나는 그야말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 산다. 이름과 시간과 공간과 먹었던 팝콘 꼬다리의 모양을 착착 정확하게 기억해서 내밀어야 사람이 되는 그런 곳에서 산다. 그래야 돈이 되는 글을 쓴다. 그래야 구걸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다.


그.래.야.


만원인지 오천 원인지 10만 원인지 100만 원인지 1000만 원인지를 정확하게 이름을 달 명패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 목표가 1,000,000,000원이 될 때까지 침을 흘리고 치마를 올리고 웃음을 흘리고 감사한다는 금칠의 말을 수백 만 번 할 준비가 완비된 이 삶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예술이라면서 철학이라면서 순수하다면서 뒷짐 지고 세는 돈다발이 시뻘겋게 변해도 반드시 그렇게 따라야만 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


토악질 나는 명패의 다양한 색깔을 모두 지나 안도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그 배우 때문에 누른 초록 버튼은 갑작스레 커져버린 빛 속에 가늘 가늘 춤추는 여자의 치마 속을 들여다보게 한다. 수천 년간 더듬고 보아 온 그 속을 여전히 탐하려는 냄새나는 눈들에 내 두 눈마저 알사탕이 되어 녹아 흐른다.


몸으로 구걸하는 어쩔 수 없는 자극의 밤에, 입으로 둘러대는 필연으로 초라하게 스러져, 플라스틱 빨강 돼지 저금통을 옆에 끼고 구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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