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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舊月

완벽하지 않은 날은 없다

by 이숲오 eSOOPo

새벽미사를 저녁으로 미루고 나니 시간의 문이 닫힌다

어차피

달력은 눅눅하고 크게 한입 문 사과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선풍기를 틀어도 이제는 여름의 공기를 느낄 수 없다

벌써

너는 떠나고 몇 자 남겨둔 티슈에선 나비가 날아 오른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요즘 체중이 느는 것은 먹는 양이 아니라 음식의 늘어나는 이름에 있다

눈치

버섯알

키위찌개

뱀장어덮밥

된장스파게티

생강쪽파파스타

고등어비늘빈대떡

고양이발톱모양쿠키

...

원조할머니막내며느리피자


체중을 줄이려면 메뉴에서 짧은 이름에 집중하자


잘 나간다는 친구가 전화기 너머로 울먹인다


정원사들이 자꾸 그만둬서 힘들다는데 듣는 내가 더 힘들다

더 힘들기 전에 등받이가 있는 의자로 바꿔야겠다


곧 있으면 달의 숫자가 두자리로 늘어난다

조급해진다

한 손으로 하던 일들을 두 손으로 해야할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모르는 사람과의 약속은 다이어리에 적는 게 꺼려진다

아무래도 다이어리는 미래의 계획보다는 과거의 기록을 돌아보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날마다 오르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산이 있다

밀린 책

미룬 책

발보다 눈이 부지런해야 오를 수 있는 산

책이 발로 정복하는 대상이었다면 다독가가 되었을


창 너머 빗소리에서 장작 타는 소리가 난다

소리는 냄새를 닮지 않아서

지치지도 않고

비위도 안 상햐고

능숙한 솜씨로 기분을 리드한다


심드렁해 하는 사이에 어느덧 9월은 舊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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