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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안에서

가장 가까운 부재

by 희수공원

가을이 걸어둔 표정을 본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무표정하고 싶지만, 어젯밤의 급정거와 얼마간의 지난 시간으로부터 온 무참의 흔적들이 고스란하다. 엎어지지 말 것을.


까만 길에서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비켜주기 싫었다니깐! 내가 틀어낸 핸들의 각도만큼 어마한 덩어리의 비속어가 작은 창문틈으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희미하게.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뾰족한 말이길 바랐다. 그래야 나를 두르고 있는 이 미진한 찌꺼기들이 놀라 달아날 수 있을 테니.


아프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삶이 주는 자잘한 통증들이 거울 안에서 웃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겪을 수 없는 그 거리를 위해 손을 뻗지만 접촉하는 거울 면도 결국 미세한 사이를 두고 가장 묵직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거기에 서 있는 너는 나인가 나를 위한 너인가 너를 위한 너인가.


누군가 했다던 다시 일어나라는 말, 어느 스포츠 영웅이 남겼다는 수천번의 실패 후 들어가는 한 골을 상상하는 것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저만치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를 위장한 네가 나를 비웃는 것을 흠뻑 살려고 한다. 그대로 다 겪으려고 한다.


가을이라 그래. 가장한 위안이래도 받아들이기로 한다. 가을이라. 떨어지고 구르며 스산해서.


거울 안에서 흩어지는 잔상들을 그대로 거기에 가둬 둔다. 지금으로 돌아온 나는 세상에 찍히는 흔적이다. 애써 감각하며 물리적으로 느끼려 한다.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거기에 새겨두고 내 호흡의 온기에 손등을 댄다. 이 가을에도 나는 영낙없이 살아남을 것이다.


어디서 본듯한 퀭한 실루엣이 낯설게 다가와 묻는다. 욕실 거울 모서리에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얼룩에 가슴 한 조각을 내준다. 그렇게 남아있는 표정으로 오늘을 살게 되겠지. 오늘만은 내 안에 네가 뒤돌아 세상으로 떠나는 내 뒷모습을 보면서 나를 응원했으면 좋겠다.


거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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