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남은 것이 없는 사람아' by 박노해, 2025
따뜻한 온기를 바라며 앞에 서 있는 투명한 그 사람은 세상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바라는 너에게 해줄 것이 없다.
세상 모든 취할 것을 다 가지려는 너에게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질 수 없는 그는 이제 더는 쓸모가 없어졌나 보다.
침 발라 넘기는 페이지를 갈망하는 너에게 또렷한 흔적과 이름이 새겨지길 원하는 너에게 그는 이제 필요 없다.
그가 채워줄 남은 것이 없는 네가 가져가려는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무거워 그는 너로부터 가장 가볍게 떠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너는 네 온도를 재고 세상은 그저 네가 네 온도만 재는 것을 바라보며 그런다, 떠나야 한다.
더는 해줄 것이 없는 너에게 세상을 향해 나누어 줄 것이 없는 너에게 세상 한 조각이 되려 했던 그는 이제 없다.
해줄 것이 없다.
네가 필요한 게 없다.
네게 소용이 없다.
쓸모가 없다.
이렇게 없는 게 많은데 부재해야 할 자리를 돌고 돌았던 그는 이제 더 없기로 한다. 이제 남은 것도 해줄 것도 없는 사람아.
▣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도착한 박노해 시인의 ‘남은 것이 없는 사람아’를 읽다가 문득 가여워서, 내가 네가 그리고 그런 세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