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의 처리

한라산 백록담 남벽

by 수의서재

코를 쿡 박고 시시콜콜 내 손이 갔으면 하는 시간을 만지작 거리다가 마음을 내려놓는다. 혼자 제대로 하려는 작심에 재를 뿌릴 수도 있다. 이리저리 떠보다 잠 못 이룬다. 그럴듯하게 나를 단속하는 방법으로 가야지, 절대 내가 끼어들 수 없도록.

사랑이 병이다.

새벽 세 시, 혹시나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다 어라 운명인가 예약을 하고 오늘 사랑이라 정의한 마음을 치고받을 수도 있는 애증으로 바꾼다. 내 손이 간 너는 네가 원하는 온전한 전체를 갖지 못하여 아쉬운 통곡을 할 수도 있으니 내가 떠나는 거다. 항공 완료, 게다가 렌터카도 일사천리다.

그래서 간절히 내가 잡고 싶었던 그 손을 잡는 게 불가능해야만 하는 각본이 삽시간에 완성되었다는 거다. 오랜만의 새벽 세시 기상도 괜찮다. 가장 큰 가방을 쫙 벌려 생각 나는 순서대로 던져 넣은 것도 좋다. 준비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그만큼 자동화된 여행 필수목록, 항상 구멍이 난 채로 떠나지만 닥치면 가장 최적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처리한 그 방법이 최고라는 신념은 살아가는 방식에 여유 있는 시선을 허락한다.


방탕과 혼란의 다른 모습, 여유다.


계획은 반드시 어그러지고 환상은 용히 바닥으로 추락한다. 남은 건 최고 난도의 훈련이다. 사랑이니 애증이니 혼자 사탕 먹고 아쉬운 눈물 짜는 소설은 흔들의자에 앉아서 꾸는 몽상인 거다.


봄 태양은 나의 적이다. 한라산 중턱을 지나자마자 찬란하고 뜨거운 태양이 나를 구워 먹는다. 지나가는 산객들이 자기는 날씨의 요정이라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연신 감탄제를 올린다.


찢어질 것 같은 눈도 통증 가득한 머리도 터질 것 같은 심장도 출렁거리는 무릎 연골도 따로따로 노려 본다. 어쩌란 말인가. 터질 듯 찢어질 듯 출렁거리는 통증 사이마다 사랑의 찬가를 부르듯 이따금 사진을 보내며 나를 위안한다. 남벽 앞에 선다.



자연은 고통을 치유한다.

거리를 가르는 여린 봄비, 강풍으로 찢어진 나뭇가지들을 다독이는 짙은 안개, 바람을 보내며 새 바람을 맞아들이는 숲과 바위들, 필요 없는 생명이라 내쳐질 위기에도 그 아름다운 겨자 연두색의 넓은 조리대밭, 흰 몸을 녹여 대지의 갈증을 채우는 겨울 동안 쌓여 있던 눈, 구름 한 점 없는 남벽의 하늘, 인간의 도시를 낮게 덮은 운무의 춤, 그 아름다움으로 통증을 마비시키며 조용히 따르라 한다.

질척일까 봐 혼자서만 안달하며 내달은 길이 산이 준 기운과 이어져 나의 방탕한 계획을 부끄럽게 하고 더 넓게 생각하라 자연의 숨소리를 남긴다.

그러므로 나는 더 기꺼이 용기 내는 사람이 된다.

산 아래 길에서 찐득한 열기에 터질듯한 나를 식혀주려는 짙은 안개의 배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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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 사진: 백록담 북서쪽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