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경애의 마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고
가까워진 채로 많은 것들을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힘껏 느끼다가
명료하게 말하기 어려운 여러,
혹은 단순하고 사소한 단 하나의 이유로
그 모든 것들과 작별하는 일.
그래서 원래 내 삶에 없던 이처럼 부재에 익숙해져야 하는 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별이 막상 내게 닥치기 전까지는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었다.
이별은 애틋함이나 그리움,
그런 단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일로 닥쳤다.
내가 공들인 관계들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멀어지는 일을 지켜본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일 정도의 생생한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막무가내로 밀어닥치는 감정의 흐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강박적인 행동들이 나타나 당황스럽기도 했고,
정말 최소한의 꼭 해야 할 일들만 억지로 해내며
꾸역꾸역 견뎌야 했다.
물론 이마저도 아주 자주 포기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이별이 분노나 실망감, 적의 같은 단일한 감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품고 살아가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경애는 아프다고 생각했다. 아픈 것을 대체할 다른 말은 없었다.
316쪽
그런데 만약 내가 그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아마 조금은 덜 힘들었을 것 같다고.
<경애의 마음>을 읽으며 생각했다.
헤어져도 헤어진 것이 아니어서
갈 곳 없는 마음들을 주워 담기 어려울 때
혼자 힘겹게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꽤 다정하게 위로가 될 소설이다.
경애 엄마는 경애가 씻는 것,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누구나 하루에 한 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그런.
104쪽
아, 하지만 참고로 <경애의 마음>은
행복하고 따뜻한 세계를 보여주며 달래는 종류의 위로는 아니다.
너의 남은 물기까지 남김없이 다 짜 주겠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슬픔에 슬픔을 더하는 방식의 위로이다.
공통의 상실감을 갖고 있는 경애와 상수가
애써 극복하려 노력하고 지키려는 마음이
애틋하고 슬퍼서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슬펐지만 그런 눈물이 주는 정화의 힘이 분명히 있어서
힘들었던 마음도 이내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실감에 이입되어 대신 울어주면서
나 또한 끝내 지켜야 할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별에 무너졌을 때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혹은 그게 무언지 궁금할 때
그것도 아니면
여러 이유로 마음이 힘들어 조금 울고 싶을 때
(사실은 언제든 모두가)
꼭 한 번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책 속 숨은 TMI를 파헤치자
소설 속 화재 사건은 실제 사건이다.
실제 1999년 발생한 인천 호프집 화재가
<경애의 마음>에 중요한 사건으로 소설화되었다.
김금희 작가가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던 시기
자주 다니던 동인천역 주변에 그 호프집이 있었다고 한다.
사건이 터진 이후 그곳을 지나는 것을 피하게 됐다고.
작가는 언젠가 그 사건이 안겨준 비애감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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