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김현영, 박은하, 손희정, 이민경, <대한민국 넷페미사>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여성혐오적인 말과 행동에 대해 지적하면
'너 메갈이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1980~90년대에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빨갱이라는 말을 메갈리아가 대체한 느낌.
"도대체 페미니스트가 뭘 했길래 사람들이, 또 소년들마저 이렇게 싫어하는 겁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페미니스트는 한국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미움을 받습니다." (웃음) 달리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란 텅 빈 기표 같은 거예요. 실재하진 않지만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폄하하며 호명되는 김치녀처럼, 이 사회가 원치 않는 여성의 이미지들에다가 자기 생각을 말하는 여성들까지 합친 뭉텅이가 바로 페미니스트인 겁니다. 그나마 재미있는 건 이 페미니스트라는 텅 빈 기표가 점차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된 정도이지요. 페미나치, 메갈리아, 워마드처럼요. (92-93쪽, 손희정)
'메갈'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나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한 말을 떠올린다.
성차별에 강경히 반대하는 것이 '메갈'이라면 우리는 '메갈'이다
가부장적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반사회적'이라면 우리는 '반사회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페미니스트로서
'메갈'을 보다 잘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 일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맥락을.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은 여성학 연구활동가 권김현영
대중문화 중심으로 활동하는 비평가 손희정
두 사람의 강의와
여성문제를 좇는 경향신문 기자 박은하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저자 이민경
두 사람의 대담으로 구성되었다.
덕분에 구어체로 기록되어 읽기 편하고,
앞 세대(권김현영, 손희정)와 뒷 세대(박은하, 이민경)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재미있다.
안 웃긴데 웃어야하는 회식 자리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상처주지 않고
오히려 함께 갖고 있는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런 웃음들이 곳곳에 녹아있다.
(실제로 글 곳곳에 '(웃음)'이 들어있는데,
나도 정확히 그 지점에서 웃고 만다.
마치 강의 현장에 내가 와 있는 느낌이랄까?)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까지는
이전 세대와 달리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관계를 부정,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영 페미니스트가 나타나고 활동했다.
그들에게 사이버스페이스는
기존의 위계질서(나이, 성별, 등)가
통하지 않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만 유효했다.
이에 반대하는 축에서
달나라 딸세포와 언니네 같은
다양한 여성 운동과 커뮤니티가 등장했다.
한편, 여성 커뮤니티 후발주자인 '선영아 사랑해' 마이클럽은
소비자로서 여성유저를 호명하였고
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삼국카페로 불리는 여성시대 등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두 세대의 활동은 결이 다르다.
전자가 민주화 이후 일상 문화적 차원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고 싸웠다면,
후자는 이미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콜라보 속에서 자라
어떤 면모에서든 소비자 정체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 면에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에서
돈은 단순히 자본이 아닌 파워를 의미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세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어떤 선후 관계로 엮이지 않고
동시에 서로 간섭하면서 존재한다.
SNS는 그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었고,
온라인에서 촉발된 문화가 오프라인으로 흐르거나
오프라인에서 제기된 문제가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등
상호간섭하며 논의를 확장시킨다.
메갈리아는 온오프라인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미러링한 온라인 공간으로서
남성이 할 때는 무기력한 청년층(두잉낫싱)이 하는
혀 끌끌 찰 만하지만 그렇다고 뭐라할 일은 아닌 무엇으로 보이던 일이
사실은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혐오였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워마드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 또한 책에서 다루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시길.
마지막으로 책 속의 수많은 띵문 중 하나만 나누고 싶다.
우리 모두 "넘어졌다고 '걷지 말걸'는 후회"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용기를 갖고 걸어가기를(이민경).
여성의 목소리가 많아지는 게 진보인 거지
그 목소리가 다 옳은 얘기여야 진보는 아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펴낼 수 있었던 이 책에는
몇 장에 걸쳐 후원자의 닉네임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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