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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Apr 05. 2019

당당한 유해함에 맞서기 위해

오해되었던 자신감 되찾아 오기

자신감보다 중요한 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감 있고 당당한 태도를 길러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자신감? 중요하고 좋지만 그것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구분하는 건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당당함? 그도 좋지만 당당하게 무례한 경우를 너무 자주 만났던 것이었다. 상대방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으므로 자연스레 장착한 머뭇거리지 않는 태도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압적인 행동들. 그런 것을 보아 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확실한 방어는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이었다. 내가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어른은 바로 당당하게 유해한 어른이었다.


자신감-자기중심적 태도-이기심-당당함-무례함-유해함. 묘하지만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태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태도들은 서로 잘못 엮여 있으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꼰대가 되는 지름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에 고민 없이 자신감과 당당함을 장착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행동과 감정을 자주 멈춰 생각하곤 했다. '혹시 내가 지금 기분 나쁜 건 너무 예민한 건가?' '지금 이걸 이야기하는 건 너무 재수 없는 행동인 걸까?' '이렇게 싫은 티를 내면 내가 이기적인 걸까?'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내 감정과 행동을 곱씹곤 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당당하게 유해한 어른이 되는 길에선 빗겨 나 있기는 했다. 다만 이대로라면, 아마 나는 머뭇거리면서 유해한 어른을 돕는 어른이 되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앞서 말한 태도들을 쉽게 퉁쳐 생각하면서 나는 꼭 필요한 자신감과 당당함과도 멀어지고 있었다. 해야 할 말조차 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무례한 태도에 쉽게 상처 받고 무너지지만 결국엔 그냥 참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은 되기 싫다.


세상은 줄곧 이거 아니면 저거를 요구했고, 많은 행동들의 복잡한 결을 보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특히나 어린 여성의 행동이라면, 더더욱 단순하고 납작하게 평가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 최종 보스일 정도로 센 히어로 <캡틴 마블>의 주인공 캐롤 댄버스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런 평가를 받아 온 것으로 보인다. '여자애가 겁도 없이',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 '감정적인 건 약한 거야.'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온 그녀는 자신의 진짜 능력을 알아채지 못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녀의 과소평가된 능력은 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도 겁나 세니까. 그걸 깨달은 후 캐롤의 능력은 그야말로 대 폭발한다.


캐롤을 보며 생각한다. 나도 더 이상 세상의 납작한 기준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지. 당당하게 무례한 사람들의 유해함을 피하느라고 내게 꼭 필요한 태도까지 결여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그러니까 자신감이나 당당함을 쉽게 뭉뚱그리는 사람은 되지 않을 거다. 그렇게 뭉뚱그려 생각하며 더러워서 피한다고 입 다물고 있으면 누구에게 좋을지는 빤하니까.


동시에 자신감과 용기가 가진 복잡한 모양에 대하여도 생각한다.


나는 온화하면서 단호할 수 있고 약하지만 동시에 강할 수 있다. 자주 무너지지만 그만큼 자주 일어설 수 있고, 많은 순간 예민한만큼 누군가의 불편함을 더 많이 알아챌 수 있다. '넌 너무 예민해, 감정적이야.' 이런 납작한 평가에 결국 나까지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내겐 조금 더 복잡한 모양의 자신감을 알아채는 시선이 필요하다. 혹은 어쩌면 이미 있었을 그 마음들에, 오염된 '자신감'을 되찾아와 이름 붙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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