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ookhee Apr 07. 2019

좀 쉬엄쉬엄 해, 너도 살아야지.

 

목욕메이트와 목욕탕에 갔다. 


원래 가기로 약속한 일정이 두어 번 밀려 이렇게 포근한 초봄의 토요일 낮에 목욕을 가게 됐다. 마지막으로 함께 목욕한 날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오랜만에 함께 간 목욕탕이었다. 낯선 동네의 낯선 목욕탕. 목욕탕은 지하에 있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서부터 정겨운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났다.


"두 명이요."


우리는 각자의 입욕권을 계산하고, 수건을 받아 여탕에 입장했다.


"먼저 들어가! 나는 때수건 사서 들어갈게."


옷을 훌훌 벗고 나는 카운터로, 친구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때수건을 사고 돌아서면서 문득 세신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만원. 세신 한 명당 이 만원이었다.  카운터에서 친구와 내 몫의 세신비를 계산하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따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친구가 들어가 있는 온탕에 몸을 담갔다.

 

우리는 탕에서 그 동안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세신을 기다렸다. 탕에서의 기다림이 길어졌다. 우리는 얼음이 가득 든 플라스틱 물통에 든 감식초를 받아들고 다시 목욕탕에 들어왔다. 사우나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지옥불 같은 사우나에서 말린 감말랭이가 되어버릴 것 같아 목욕탕 밖의 평상에 앉아서 잠시 쉬기로 했다. 잠시 쉬다가 다시 온탕에서 몸을 불리기를 십여 분.


"백 이십 사! 백 이십 사!"


목욕탕을 쩌렁쩌렁 울리는 호명 소리에 우리는 후다닥 이모님들이 계신 곳으로 달려 갔다. 친구가 먼저 세신 침대에 눕고, 나는 그 옆 침대에 몸을 뉘였다. 세신을 해 주시는 세신사 이모님은 아담한 키의 중년 여성분이셨다. 앞, 옆, 뒤, 옆. 몸을 방향에 따라 한번씩 뒤집고, 그렇게 세 바퀴 쯤 몸을 굴렸을 때 세신이 얼추 끝나는 듯 했다. 끝나겠거나 하고 엎드려 있는데, 세신을 해주시는 이모님이 내 어깨, 날갯죽지, 등허리를 꾹꾹 눌러가며 마사지를 해주었다. 요며칠 늦게까지 일을 하며 딱딱하게 굳은 어깨가 시원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아가씨 어깨가 왜이리 뭉쳤어. 일 조금만 해."


이모님은 뭉친 내 어깨와 목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예상치못한 세신사 이모님의 따뜻한 염려의 말에 홀딱 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홀딱 벗고 있긴 했다만, 뭔가 숨기고 있던 것을 들킨 것 같은 기분. 나는 빙긋 웃으며 장난스런 목소리로 이모님의 염려에 대꾸했다.


"에효. 조금만 일하면 돈 조금만 벌어서 안돼요. 나 먹고 살아야지~"


이모님은 찡얼찡얼 우는 소리를 하는 내 등을 마사지 도구로 벅벅 밀며 말했다.


"그래도. 적당히~ 조금만 해. 이거 아프지 않어?"


"괜찮아요."


사실 세신사 이모님 손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매웠다.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 마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을 들켜버려서. 차라리 얼얼한 등짝에 정신이 팔리는 게 나으니까. 괜찮다고선 이모님의 그 말을 곱씹으며 누워있었던 걸까. 


엎드려 있는 동안 내 등을 밀어주는 이모님을 와락 안고 싶은 마음을 꼭꼭 눌러야했다.

어쩌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내 자신은, 매 순간 미운 말을 하는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 '쉬엄쉬엄해도 된다.'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깨가 뭉치도록 일하지 말고. 적당히 해. 아가씨도 쉬엄 쉬엄해야지.' 


처음 만난 세신사 이모가 던진 말에 무장해제된 마음.

한동안 그 말이 자주 떠오를 것 같다.




나를 미워하는 나 때문에, 매 순간 마음 고생하는 나에게도, '고생하는구나.' 라고 얘기해줘야지.

별나고 매서운 '나'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나'. 정말 고생이 많다. 고생하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당당한 유해함에 맞서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