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틈 없는 속근육의 단련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에는 운동이 큰 도움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예전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게 그 말들은 뭐랄까 유니콘 같았다. 상상 속 어여쁜 이미지로는 그려지지만 직접 본 적은 없는 그런 것. 예컨대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날 수 있다.' 라던가 '밥을 꼭꼭 씹어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 같은 말들처럼 원인과 결과가 딱 들어맞아서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물론 과학적인 이유들에 대해서도 듣고 배운 적은 있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면 뇌에서 우울증을 없애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늘어나고 엔도르핀이 증가한다는 설명은 무언가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일까. 세로토닌이나 엔도르핀 같은 것들이 다 내 몸 안에서 열심히 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도통 어떻게 움직이는 원리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나는 필라테스 수업을 주 2회 나가게 되면서부터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세로토닌, 엔도르핀 그런 것이 작용했는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필라테스를 하려면 정말 다른 생각은 말고 내 몸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랑 말랑한 고무 보수(한쪽은 평평하고 반대쪽은 반원형의 필라테스 소도구) 위에서 두 발을 딛고 균형을 잡으려면 발바닥 전체에 무게 중심을 잡고 배와 등으로 연결되는 근육의 힘으로 버텨야 했다. 폼롤러 위에 누워 팔다리를 천천히 하나씩 떼면서 균형을 잡아야 할 때는 배꼽 쪽으로 속 근육까지 다 모아 주는 느낌으로 힘을 주어야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그 느낌에 집중하지 않고 잠깐 딴생각을 하면 자세는 바로 위태로워진다. 우당탕탕 넘어지기 싫으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버텨야 하는 약 10초 간의 치열한 초 집중의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선생님은 꼭 10초 카운트가 끝나면 '자 10초 더~'를 자주 외치시는 편이다. '하 참 더는 안 속아 으 분해' 하면서 속기를 몇 번, 이제 나는 넉넉잡아 30초 정도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내 몸의 균형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또 다음 동작, 다음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마무리 스트레칭 후 수업이 끝나는 것이다. 어쩌면 근육을 단련하는 일은 다른 말로는 뭔가를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나를 짓누르는 기분을 느끼면서 '피곤해 죽겠다 오늘은 그냥 가지 말까?'를 백번 고민하다 무겁게 발걸음을 뗐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또 그렇게 아무 생각 안 하고 내 몸에만 집중하며 한 시간의 수업을 들었다. 땀도 많이 나고 근육도 당기는 와중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 거의 깨어 있는 하루 종일을 고민하고 걱정하며 보냈던 것 같은데, 한 시간 동안 나는 그 문제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하고 정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나를 괴롭히는 다른 생각들을 좀 내려놓고 그냥 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게 되니까 신기하게도 1시간 강도 높은 운동이 끝난 후에 나는 더 단순해져 있었다. '오늘 정말 힘들었지만 시원하다 얼른 집에 가서 샤워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는 그게 생각지도 않을 만큼 어려운 다른 일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해소될 때도 있다. 그게 내겐 난이도 있는 필라테스 자세들이었다. 이젠 낮에 조금 고되다 싶으면 '오늘 운동가는 날이네, 얼른 이 기분 다 조져버려야지.' 한다. 오늘도 위태롭게 리포머에 몸을 맡기고 복잡한 생각들은 다 내려놓고 온 기분이다. 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제 내게 남은 단순한 생각들, '아 얼른 샤워하고 일찍 자야지' 했던 것을 실현시켜 주러 빨리 누워야겠다.